1. 신상(神相)
신상은 하나님의 속성(屬性)중의 꼴의 측면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정한 꼴 또는 꼴이 될 수 있는 가능성(可能性), 규정성(規定性)을 갖고 있다. 이것이 곧 신상이다. 이 신상에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의 두 종류의 이성성상과 개별상이 있는 바, 먼저 성상과 형상을 다루고자 한다.
(1) 성상(性相)과 형상(形狀)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은 본성상(本性相), 본형상(本形狀)이라고도 하며 이 양자를 합하여 이성성상이라고 한다. 하나님과 만물(萬物, 자연)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지만, 이 관계를 원인(原因)과 결과(結果)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본성상(本性相)은 피조물의 무형성(無形的), 기능성(機能的) 측면의 근본원인이며, 본형상(本形狀)은 피조물의 유형적(有形的), 물질적 측면(質料的側面)의 근본원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관계로서 서로 닮고 있기 때문에 본성상(本性相)은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며 본형상(本形狀)은 인간의 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양자는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속성이 아니며, 서로 상대적 및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에서 중화(中和, 調和)를 이루어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원리강론에 하나님은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신다(원리강론, 1987, p. 35)고 한 것은 이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확히 말해서 신상은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이 중화를 이룬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본체론(本體論)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신상관(神相觀)은 유심론(唯心論)도 유물론(唯物論)도 아니며, 유일론(唯一論) 또는 통일론(統一論)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심론(唯心論)은 본성상만이 우주의 근본이라고 보는 입장에 해당하며, 유물론(唯物論)은 본형상만이 우주의 실체라고 보는 입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각각의 내용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1) 성상(性相) (本性相)
① 본성상(本性相)과 피조물(被造物)
하나님의 성상(性相) (本性相)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며(따라서 성상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의 무형적, 기능적측면의 궁극적 원인이 된다. 즉 인간의 마음, 동물의 본능(本能), 식물의 생명, 광물의 물리화학적(物理化學的) 작용성의 근본원인인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이 차원을 달리하면서 시간, 공간의 세계에 전개된 것이 광물의 물리 화학적 작용성이며, 식물의 생명, 동물의 본능, 인간의 마음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성상(性相, 마음)이 광물과 같은 무기물에도 비록 극히 낮은 차원에 있어서나마 깃들어 있음을 뜻하며, 식물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마음이 생명의 형태를 취한, 보다 더 높은 심적기능(心的機能)으로서 나타나며(최근 인간의 마음에 반응하는 심적 작용이, 식물에도 있음이 실험을 통해서 알려지고 있다), 동물의 단계에 있어서는 육심(肉心, 본능(本能))의 형태를 취한 한층 더 높은 심적기능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동물에도 인간에서와 똑같은 지정의(知情意)의 기능 즉 의식(意識)이 있음이 밝혀졌다(다만 동물이 인간과 다른 점은 동물에는 인간에서와 같은 자아의식(自我意識)이 없다는 점이다).
② 본성상(本性相)의 내부구조(內部構造)
그런데 하나님의 성상(本性相)은 다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바, 내적 성상 및 내적 형상이 그것이다. 내적 성상은 기능적부분(따라서 주체적부분)을 말하며, 내적 형상은 대상적 부분(對象的部分)을 말한다. 하나님의 내적 성상과 내적 형상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i) 내적 성상(內的性相)
기능적부분이라 함은 지·정·의의 기능을 말하는 바, 이중에서 지적기능(知的機能)은 인식(認識)의 능력으로서 감성(感性)·오성(悟性)·이성(理性) 등의 능력을 말하고, 정적 기능(情的機能)은 정감성(情感性) 즉 희로애락 등의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며, 의적기능(意的機能)은 의욕성 즉 욕구하거나 결심·결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기능은 내적 형상(內的形狀)에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내적 성상(內的性相)은 내적 형상(內的形狀)에 대하여 주체적 부문(主體的部分)이 되고 있다. 지적기능에 있어서 감성이란 오관(五官)에 비치는 대로 아는 능력, 즉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뜻하며, 오성(悟性)이란 논리적으로 원인(原因)이나 이유(理由)를 따져서 아는 능력이다. 이성(理性)이란 보편적 진리를 구하는 능력 또는 개념화(槪念化)의 능력을 말한다. 이 3기능(機能)을 뉴턴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을 발견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함에 있어서 먼저 사과가 낙하(落下)하는 것을 사실 그대로 인식(認識)하였으며, 다음에 사과가 낙하(落下)하는 원인을 생각하여 대지(大地)와 사과가 서로 인역(引力)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후에 여러 가지 실험 관찰 등의 연구를 통해서, 지구나 사과뿐 아니라 우주내의 질량(質量)을 갖고 있는 모든 물체(物體)가 인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 처음 단계의 인식이 감성적 인식(感性的認識)이며, 두번째 단계의 인식이 오성적 인식(悟性的認識)이며, 세번째 단계의 인식이 이성적 인식(理性的認識) 즉 보편적 인식인 것이다.
ii) 내적 형상(內的形狀)
이것은 본성상(本性相) 내의 대상적 부분을 말하며, 몇 개의 꼴의 요소로써 이루어져 있다. 그 꼴의 요소중 주요한 것은 관념(觀念), 개념(槪念), 원칙(原則), 수리(數理) 등이다.
ㄱ) 관념(觀念)...... 관념(觀念)은 마음 [성상(性相)] 속에 있는 피조물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표상(表象), 즉 영상(映像)을 말한다. 인간들은 경험을 통해서 객관세계의 사물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모습을 영상으로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바, 이 영상(映像)이 바로 관념(觀念)이다. 인간의 경우는 경험(선험적)을 통해서 관념을 얻지만 하나님은 절대자(絶對者)이시기 때문에 본래부터 무수한 관념(觀念)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ㄴ) 개념(槪念)...... 개념(槪念)은 추상적인 영상을 말하며, 일군(一群, 한 무리)의 관념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요소가 영상화(映像化)한 것을 말한다. 예컨대 개, 닭, 소, 말, 돼지 등의 관념에 있어서 공통적인 요소는 감각(感覺)을 가지고 운동하는 성질인 바, 이것을 영상화시키면 동물(動物)이라는 추상적인 꼴을 얻게 된다. 이것이 개념(槪念)이다. 이 개념에는 종개념(種槪念), 유개념(類槪念)이 있다.
ㄷ) 원칙(原則)...... 원칙(原則)은 피조세계의 자연법칙(예:물리학적 법칙, 화학적 법칙 등) 및 규범법칙(當爲의 법칙) 또는 가치법칙(價値法則)의 근본원인이 되는 법칙을 말한다. 수많은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은 이 원칙이 각각 자연현상(물리적 및 화학적현상)과 인간생활을 통해서 나타나는 표현형태인 것이다. 마치 식물(예:나무)에 있어서 한 알의 씨앗이 발아하여 줄기가 되고 수많은 잎(葉)들이 무성하게 되듯이, 하나의 원칙에서 수많은 법칙(法則, 자연법칙, 규범법칙)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ㄹ) 수리(數理)...... 수리(數理)는 수적 원리(數的原理)라는 뜻으로 자연계의 수적(數的) 현상(現象)의 궁극적 원인을 말한다. 즉 내적 형상속에는 수적 현상의 근원이 되는 무수한 수(數), 수치(數値), 계산법(計算法)이 관념으로서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수리(數理)이다.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만물(萬物, 자연)의 근본(根本)은 수(數)이다라고 말할 때의 數의 개념(槪念), 또 양자역학(量子力學)의 대성에 공헌한 영국의 물리학자 디락(P. Dirac, 1902- )이 하나님은 고도의 수학자(數學者)이며, 우주를 구성할 때 극히 고급한 수학을 사용했다.'라고 했을 때의 數의 개념은 모두 통일사상의 원리(數理)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ii) 내적 형상(內的形狀)의 원리적(原理的) 및 성서적(聖書的) 근거(根據)
다음은 以上의 내적 형상에 관한 이론이 통일원리 및 성서의 어디에 그 근거가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ㄱ) 내적 형상(內的形狀)...... 내성[內性, 성상(性相)]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반드시 그 어떠한 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닮아난 그 외형(外形)이 눈에 보이는 그 어떠한 꼴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전자(前者)를 성상(性相)이라 하고 후자(後者)를 형상(形狀))이라 한다(원리강론,1987.p. 33). 이것은 눈에 보이는 꼴 이전에 성상(性相)속에 이미 꼴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성상(性相)속의 꼴이 바로 내적 형상(內的形狀)이다.
ㄴ) 관념(觀念)·개념(槪念)......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하나님이 6일간에 걸쳐 만물을 창조함에 있어서 매일(每日)의 창조를 마치시고는 그대로 된지라(창세기 1:7, 9, 11절),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4, 10, 12, 18, 21, 25절)고 하셨는데 이것은 마음속에 지녔던 관념(觀念), 개념(槪念)대로 피조물이 닮아 났음을 뜻한다.
ㄷ) 원칙(原則)·원리(原理)... ... 하나님은 원리(原理)에 의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원칙에 따라서 攝理를 하심(원리강론, 1987, p. 108), 하나님은 원리(原理)의 주관자로 계시다(同上 p. 64), 원리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同上 p. 103), 하나님은 원리(原理)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同上 p. 92)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원칙(원리)을 세운 후,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ㄹ) 수리(數理)...... 피조세계(被造世界)는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이 수리적인 원칙에 의해서 실체적으로 전개된 것이다(同上 p. 62). 하나님은 수리성(數理性)을 갖고 계시다(同上), 하나님은 수리적(數理的)으로도 존재하시는 분이시다(同上 p. 376)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적 형상(內的形狀)을 이루고 있는 꼴의 요소들은 모두 統一原理(원리강론)와 聖書에 그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以上은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 내의 기능적 부분(내적 性相)과 대상적 부분[對象的部分, 내적 형상(內的形狀)]을 인간의 마음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다. 본성상을 이와 같이 상세히 다루는 것은 현실문제의 해결을 위해서이다. 예컨대 내적 성상인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은 그것이 심정(心情)을 터로 하고 작용할 때, 사랑을 터로 하는 진(眞)·미(美)·선(善)의 가치관이 성립되는데 이러한 가치관은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내적 형상(內的形狀)은 지(知)·정(情)·의(意)의 대상적 부분(對象的部分)인 동시에 본형상과 더불어 피조물의 유형적 부분(有形的部分)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과, 지(知)·정(情)·의(意) 즉 주체부분主體部分에 대응하는 가치가 진(眞)·미(美)·선(善)이라는 사실에서, 현실생활에 있어서 의식주(衣食住)의 물질적 생활보다도 진(眞)·미(美)·선(善)의 가치생활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이것도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된다. 다음은 하나님의 형상(本形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 형상(形狀) ; 본형상(本形狀))
① 본형상(本形狀)과 피조물(被造物)
하나님의 형상(本形狀)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의 몸에 해당하며, 이것은 모든 피조물의 유형적(有形的)인 요소(要素) 측면의 근본원인이 된다. 즉 인간의 몸(肉體), 동물의 肉, 식물의 조직세포(組織細胞), 광물의 分子 原子 등의 궁극적 원인인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본형상(本形狀)이 차원을 달리하면서 시간· 공간의 세계에 전개(展開)된 것이 광물의 분자 원자이며, 식물의 조직세포이며, 동물의 肉이며, 인간의 몸인 것이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유형적 요소(有形的要素)의 근본원인이 하나님의 형상인데 이 피조물의 유형적요소의 근본원인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하나는 소재(素材; 質料)적 요소(要素)요, 또 하나는 무한(無限)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無限應形性)이다(만물의 형태 자체의 근본원인은 내적 형상(內的形狀)이다).
여기서 무한(無限)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無限應形性)을 비유적으로 예를 든다면 물(水)과 같다 하겠다. 물 자체는 다른 만물과 달라서 일정(一定)한 형태가 없다. 그러나 용기(容器)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를 나타낸다. 삼각형(三角形) 용기에서는 삼각형(三角形)으로, 사각형 용기에서는 사각형으로, 원형의 용기에서는 원형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물이 무형(無形)인 것은 실은 어떠한 용기의 형태에도 응변(應變)하는 무한(無限)한 응형성(應形性)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물이 무형(無形)인 것은 실은 무한형(無限形)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형상(本形狀)도 그것 자체는 일정(一定)한 형태가 없지만, 어떠한 형태의 영상에도 응변(應變)할 수 있는 응형성(應形性) 즉 무한응형성(無限應形性)을 소재적(素材的) 요소외(要素外)에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피조물의 유형적 요소(有形的要素)의 근본원인에는 소재적 요소와 무한응형성의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본형상(本形狀)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경우, 창작(創作)이란 마음이 구상한 무형의 꼴의 틀에 일치(一致)하도록 가시적(可視的)인 소재(조각의 경우:石膏 또는 大理石)를 변형시키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창작이란, 구상한 꼴의 틀(形式)에다가 소재(내용)를 맞추어 내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경우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본성상내의 내적 형상(각종 觀念)이 틀(용기) 또는 주형(鑄型)이 되어서, 이 틀에 무한응형성을 지닌 소재적 요소를 부어 넣은 후 일정하고도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하는 작업을 창조(創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② 본형상(本形狀)과 과학(科學)
본형상(本形狀)에 있어서, 피조물의 유형적(有形的) 측면의 두 근본원인 중의 하나인 소재적 요소는 요컨대 과학의 대상인 만물(물질)의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소재적 요소와 과학자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오늘의 과학은 물질의 근본원인을 소립자(素粒子)의 전단계(前段階)인 에너지(物理的에너지)라고 보고 있으며, 그 에너지는 파동성(波動性)과 입자성(粒子性)을 띠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결과의 세계, 현상의 세계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 원인이 에너지라 하더라도 궁극적인 제1 원인(第一原因)에는 과학이 도달할 수 없다. 본원상론(本原相論)은 그 궁극적 원인을 바로 본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본형상을 과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에너지의 前단계. 즉 前단계 에너지'(Prior-stage Energy) 또는 간단하게 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Pre-Energ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③ 본형상(本形狀)과 힘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는 본형상(本形狀; Pre-Energy)에서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 먼저 두 가지의 힘(에너지)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 하나는 형성(形成) 에너지(Forming-Energy)요, 다른 하나는 작용(作用) 에너지(Acting- Energy)이다. 전자(前者)인 형성(形成)에너지는 곧바로 입자(粒子)로 화하여 현실적인 물질적 소재가 되어서 만물(피조물)을 형성하고, 후자(後者)인 작용(作用)에너지는 만물에 작용하여 만물(萬物, 자연) 상호간에 주고 받는 힘(例:求心力, 遠心力 등)을 일으킨다. 이것을 통일사상에서는 원력(原力; Prime-Force)이라고 부르며, 이 원력(原力)이 만물을 통해서 작용력으로 나타날 때 이 작용력을 만유원력(萬有原力; Universal Prime-Forc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본형상(本形狀)에서 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 형성(形成)에너지 및 작용(作用)에너지가 발생함에 있어서, 사랑의 근원인 심정(心情)이 수수작용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 두 에너지는, 단순한 물리적인 에너지만이 아니며, 물리적 에너지와 사랑의 힘과의 복합물(複合物)인 것이다. 따라서 원력(原力)에도, 만유원력(萬有原力)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文鮮明 先生은 1975년 5월의 희망(希望)의 날 만찬(晩餐) 대강연회(大講演會)이후, 자주 만유원력(萬有原力)에도 사랑의 힘이 작용한다고 말씀하고 계심).
3)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이동성(異同性)
다음에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이 本質的으로 동질적(同質的)인가 이질적(異質的)인가, 즉 성상과 형상의 이동성(異同性)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二性性相)론(論)이, 일반 철학상의 본체론(本體論)으로 볼 때 어떠한 입장이 될 것인가, 즉 성상(性相) 형상(形狀)의 이성성상(二性性相)론(論)이 일원론(一元論)인가 이원론(二元論)인가, 또는 유물론(唯物論)인가 유심론(唯心論, 觀念論)인가. 여기의 일원론(一元論)이란 우주의 시원(始元)이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일원론적(一元論的) 유물론(唯物論)이거나, 우주의 시원(始元)이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일원론적(一元論的) 유심론(唯心論, 觀念論)을 말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전자(前者)에 속하고 헤겔의 관념론은 후자(後者)에 속한다. 그리고 이원론(二元論)은 물질과 정신이 각각 별개이면서 우주생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사유(思惟; 精神)와 연장(延長; 물질)의 두 실체를 인정하는 데카르트(R. Descartes)의 유심이원론(物心二元論)이 그 예이다.
그러면 통일사상의 성상(性相)·형상(形狀)의 이성성상(二性性相)론(論)은 일원론(一元論)인가, 이원론(二元論)인가, 즉 원상(原相)의 성상과 형상이 본래 동질적인 것인가 이질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만일 성상과 형상이 이질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이원적 존재(二元的 存在)가 되어 버린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상(마음)과 형상[전에너지(前에너지, 에너지로 변환되기 전의 상태)]이 이질적(異質的)인 두 요소인가, 동질적(同質的)인 요소의 두 표현태(表現態)인가를 알아보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은 동질적인 요소의 두 표현태(表現態)이다. 이것은 마치 수증기와 얼음(氷)이 물(水:H₂O)의 두 가지의 표현태(表現態)인 것과 같다. 물은 물의 분자(分子)인 H₂O의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균형을 이룰 때이며, 열을 가하여 척력(斥力) 이 우세해지면 기화(氣化)하여 수증기(水蒸氣)가 되고, 기온(氣溫)이 하강(下降)하여 빙점 이하로 떨어져서 인력(引力)이 우세해지면 얼음이 된다. 수증기나 얼음은 모두 물의 표현태, 즉 물분자의 引力과 斥力의 상호관계의 표현양식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전혀 이질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상(性相)·형상(形狀)의 이성성상도 하나님의 절대속성의, 즉 동질적 요소의 두 가지 표현태(表現態)인 것이다. 절대속성이란 에너지적 심(心)이요, 심적(心的) 에너지이다. 에너지와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본래 하나이다. 이 절대속성이 창조과정에서 분화(分化)된 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서의 성상(性相)과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형상(形狀)이다.
성상과 형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상은 심적 요소(心的要素)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에너지적 요소도 갖고 있으며, 단지 심적요소(心的要素)가 에너지적요소보다 많을 뿐이다. 또 형상은 에너지적 요소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심적 요소도 갖춰져 있으며 에너지적 요소가 심적 요소보다 많을 뿐이다. 그와 같이 성상과 형상은 전혀 이질적(異質的)인 것이 아니다. 양자 모두 공통적으로 심적 요소와 에너지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조세계(被造世界)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정신(마음)과 물질로서 서로 이질(異質)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역시 거기에도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을 표시하는 例로서 마음에도 에너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개구리 등에서 채취한, 신경이 달린 골격근(骨格筋ː신경근표본)에 대하여 신경(神經)에 전기적 자극을 주면 근육은 수축(收縮)한다. 한편 우리들은 마음으로써 손이나 발의 근육을 움직인다. 이것은 마음이 신경을 자극하여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다. 즉 마음에도 물질적인 에너지(전기에너지)와 같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면술(催眠術)로 타인의 몸, 예컨대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에너지가 있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에너지에도 성상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최근의 과학에 의하면, 물리적(物理的) 진공상태(眞空狀態)에서 에너지가 진동(振動)하여 소립자(素粒子)가 형성되는데, 이 때의 에너지의 진동은 연속적이 아니고 단계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마치 음악에 음계(音階)가 있듯이 同에너지가 단계적으로 진동해서 그 결과 그 단계에 따라서 규격(規格)이 다른 소립자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마치 음악에 있어서 음계(音階)의 차가 마음에 의해서 나타나듯이 에너지의 배후에도 마음(성상)이 있어서 진동단계를 나타낸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이 성상(性相) 속에도 형상적 요소가 있고 형상(形狀)속에도 성상적 요소가 있지만 원상에 있어서의 성상과 형상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절대속성에서 성상과 형상의 차이가 생기고, 창조를 통하여 그 속성이 피조물이 되어서 피조세계에 나타날때 이질의 두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하나의 점에서 두 방향으로 두 개의 직선(直線)이 그어지는 것과 같다. 그 때 하나의 직선은 성상(精神)에 대응(對應)하고, 다른 직선은 형상(物質)에 대응하는 것이다(그림 1-1).

성서에는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질을 알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1:20). 피조물을 보면 마음(정신)과 육신, 본능과 肉, 생명과 세포조직 등의 양면성(兩面性)이 있기 때문에 귀납적(歸納的)으로 볼 때, 절대원인자인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의 이성성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있어서 이성성상은 실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원리강론에서는 하나님은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을 본체론(本體論)에서 볼 때는 통일론(統一論)이 되게 된다. 그리고 창조를 구상하기 전의, 절대속성 그 자체만을 표현할 때의 본체론은 유일론(唯一論)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 C.)에 의하면 실체(實體)는 형상(形相ːeidos)과 질료(質料ːhyle)로 되어 있다. 형상(形相)이란 실체로 하여금 바로 그것이 되게 하는 본질을 말하며, 질료는 실체를 이루고 있는 소재를 말한다. 서양철학의 기본적인 개념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는 통일사상에서 말하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에 해당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형상(形相)과 질료(質料)를 구극(究極)에까지 소급(遡及)해 올라가면 순수형상(純粹形相ː第一形相)과 제1질료(第一質料)에 도달한다. 여기의 순수형상이 곧 하나님이지만 그것은 질료가 없는 순수한 활동이며, 사유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순수한 사유(思惟) 또는 사유의 사유(노에시스, 노에세오스)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1질료(第一質料)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체론(本體論)은 이원론(二元論)이다. 또 제1질료(第一質料)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본체론은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창조주로 보고 있는 기독교의 신관(神觀)과도 다르다.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 1225~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思惟)를 근거로 하여, 그와 마찬가지로 순수형상 또는 사유의 사유를 하나님으로 보았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 354~430)와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이 무(無)에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질료를 포함한 일체의 창조주시며 게다가 하나님에게는 질료적 요소가 없으므로 그는 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無에서 물질이 생긴다는 교의(敎義)는, 우주가 에너지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는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하나님과 정신과 물질(物體)를 세 가지의 실체라고 하였다. 구극적(究極的)으로는 신이 유일(唯一)한 실체이나 피조세계에 있어서의 정신과 물체는 각각 하나님에 의존하면서도 상호간에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실체라고 하여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했다. 그 결과, 정신과 물체는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그 설명이 곤란(困難)하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元論)을 이어받은 게엘링크스(A. Geulincx, 1624~1669)는, 서로 독립한 이질적인 정신과 신체 사이에 어떻게 해서 상호작용이 가능한가 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양자 사이를 매개(媒介)한다고 설명했다. 즉 정신이나 신체의 한편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계기(契機)로 하여 그에 대응하는 운동을 신(神)이 다른 한편에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회원인론(機會原因論ːoccasionalism)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방편적(方便的)인 설명에 불과할 뿐 오늘날에는 아무도 이것을 거들떠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정신과 물질을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라고 본 데카르트의 관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서양사상이 포착한 형상(形相)과 질료(質料) 혹은 정신과 물질의 개념에는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난점을 해결한 것이 통일사상의 성상과 형상의 개념, 즉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은 동일한 본질적 요소의 두 가지의 표현태(表現態)이다라는 이론이다. 이상으로 신상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친다. 다음은 또 하나의 신상인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 양성(陽性)과 음성(陰性)
1) 양성(陽性)과 음성(陰性)도 이성성상이다.
양성(陽性)과 음성(陰性)도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이다. 그러나 같은 이성성상인 성상과 형상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성상과 형상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속성이지만 양성과 음성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속성이며, 직접적으로는 성상과 형상의 속성(屬性)이다. 즉 양성과 음성은 모두 성상(性相)의 속성인 동시에 형상(形狀)의 속성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도 양성과 음성을 그 속성으로서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본형상(本形狀)도 양성과 음성을 그 속성으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양성과 음성도 이성성상과 마찬가지로 중화(中和)를 이루고 있다. 원리강론에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주체로 계시다(1987, p. 35)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사실을 뜻한다. 이 중화(中和)의 개념도 성상과 형상의 중화와 마찬가지로 조화(調和), 통일(統一)을 의미하며 창조가 구상되기 이전에는 하나의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 하나가 창조에 있어서 양적 속성(陽的屬性), 음적 속성(陰的屬性)으로 분화(分化)되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인 역학(易學)의 태극생량의(太極生兩儀)(太極에서 음양이 생겨났다)는 맞는 말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양성 음성의 개념은 역학(易學)의 양(陽)·음(陰)의 개념과 비슷하나 반드시 일치(一致)하지는 않는다. 동양적인 개념으로는 陽은 빛(光), 밝음(明)을 뜻하며 陰은 그늘(蔭), 어두움(暗)을 뜻한다. 이 기본적인 개념(槪念)이 확대적용되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즉 陽은太陽 ,山, 天, 낮, 경(硬; 단단함), 열(熱), 高 등의 뜻으로, 그리고 陰은 이에 대응하여 月, 谷, 地, 밤, 연(軟; 연함), 냉(冷), 저(低) 등의 뜻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은 모두 성상 형상의 속성이기 때문에 피조세계에 있어서 성상 형상은 개체(個體) 또는 실체(實體)를 이루고 있으며, 양성·음성(陽性·陰性)은 이 실체(피조물)의 속성으로 나타나 있다. 예컨대 태양과 밝음(明)에 있어서 태양(個體)은 성상 형상의 통일체(統一體); 實體)이며 태양빛의 밝음만이 陽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달(月) 그 자체는 개체(實體)이며 달의 반사광의 밝음의 희미함만이 陰인 것이다.
여기서 통일사상의 실체(實體)의 개념을 잠깐 다루고자 한다. 통일사상의 실체는 물론 통일원리의 實體의 뜻에서 유래한다. 통일원리에는 실체기대(實體基臺), 실체헌제(實體獻祭), 실체성전(實體聖殿), 실체세계(實體世界), 실체상(實體相), 실체대상(實體對象), 실체노정(實體路程) 등 실체와 관련된 용어가 자주 쓰여지고 있는데, 여기의 실체(實體)는 피조물, 개체, 육신을 쓴 인간, 물질적 존재 등의 뜻을 지닌 용어이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성상 형상의 합성체(合性體; 통일체(統一體))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피조물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은 각각 개체(個體)의 구성부분이 되고 있어서, 성상이나 형상 그 자체도 또한 실체(피조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마치 자동차도 제작물(제작물(製作物); 實體)이며, 자동차의 구성부분인 부품(예:타이어, 트랜스미션 등)도 제작물(실체)인 것과 같다. 따라서 인간의 성상과 형상도 통일사상에 있어서는 각각 실체의 개념에 포함된다.

그런데 원상(原相)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을 각각 본양성·본음성(本陽性·本陰性)이라고 한다(원리강론 1987, p. 35). 원상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 및 본양성(本陽性)과 본음성(本陰性)을 닮아난 것이 인간의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이다. 그런데 피조세계에서는 상술한 바와 같이 성상도 형상도 모두 실체의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양성과 음성은 모두 실체로서의 성상·형상(또는 그 합성체(合性體)인 개체)의 속성이 되고 있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1-2와 같다. 따라서 원상에 있어서의 성상·형상과 양성·음성의 관계를 정확히 알려면, 인간에 있어서의 실체로서의 성상·형상과 그 속성으로서의 양성·음성의 관계를 알아보면 된다. 다음에 도표로써 인간의 경우의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의 관계를 밝히면 그림 1-3과 같다.
| 양성 | 음성 | ||
|---|---|---|---|
| 성상 | 지 | 지정의 명석, 기억, 상기력, 판명, 재치 |
모호, 망각, 기명력, 혼동, 고지식 함 |
| 정 | 유쾌, 시끄러움, 기쁨, 흥분 |
불쾌, 정숙, 슬픔, 침착 |
|
| 의 | 적극적, 공격적, 창조적, 경솔성 |
소극적, 포용적, 보수적, 신중성 |
|
| 형상 | 융기부, 돌출부, 철凸부, 표면 |
함몰부, 공혈부, 요凹부, 이면 |
|
이 도표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성상(性相)(마음)의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에도 각각 그 속성으로서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이 있다. 예컨대 지적(知的)기능에는 명석(明晳), 판명(判明) 등의 양적 측면과 모호(模糊), 혼동(混同) 등의 음적 측면이 있고, 의적(意的)기능에도 적극적, 창조적 등의 양적 측면과 소극적, 보수적 등의 음적 측면이 있다. 그리고 형상(形狀)(육신)에 양적 측면(隆起部, 突出部 등)과 음적 측면(陷沒部, 孔穴部 등)이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이 도표에서 열거(例擧)한 것은 인간의 경우일 뿐이며, 하나님의 경우는 이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심정 중심한 원인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창조 전의 하나님의 성상(知情意)과 형상의 속성인 陽性·陰性은 다만 조화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며, 일단 창조가 개시되면 그 가능성으로서의 양성·음성이 표면화되어서, 지정의(知情意)의 기능에 조화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형상에도 조화로운 변화를 가져 온다.
2) 陽性-陰性과 男子-女子와의 관계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陽性-陰性과 男子-女子의 관계이다. 동양에서는 고래(古來)로 남자를 양(陽), 여자를 음(陰)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통일사상(통일원리)에서는, 남자를 양성실체(陽性實體), 여자를 음성실체(陰性實體)라고 말한다. 얼핏보면 동양의 남녀관(男女觀)과 통일사상의 남녀관(男女觀)이 같은 것 같으나 사실은 전연 다르다.
상기(上記)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남녀의 성상과 형상이 다 함께 양성-음성을 갖고 있으나, 성상에 한해서는 남자의 성상의 陽陰과 여자의 성상의 양음이 질적으로 다르다(후술(後述)). 이를테면 남자의 陽性-陰性은 남성적인 陽陰, 여자의 陽性-陰性은 여성적인 陽陰이라고 할 수 있다(후술(後述)). 이러한 양성과 음성을 가진 남자를, 양성을 지닌 성상(性相)-형상(形狀)의 통일체라고 하며, 이러한 양성과 음성을 지닌 여자를 陰性을 지닌 성상-형상의 통일체라고 한다. 이것을 간단히 말해서, 남자를 양성의 실체, 여자를 음성의 실체라고 표현한다(원리강론 1987, p. 37).
여기서 특별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를 양성(陽性)의 실체(實體)라고 할 때의 양성과, 여자를 陰性의 실체라고 할 때의 음성이 상기(上記) 도표에서 밝혀진 양성-음성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성상에 있어서 男女間의 양성과 음성이 다르고, 형상(形狀)에 있어서 男女間의 양성-음성이 다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형상(形狀)(육신)에 있어서의 남녀간의 양성-음성의 차이를 설명한다. 형상 즉 몸에 있어서는 陽性인 융기부(隆起部)나 돌출부(突出部)도, 또 음성인 함몰부(陷沒部)나 공혈부(孔穴部)도, 남녀가 똑같이 갖고 있으나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 남자는 突出部(陽性)가 하나 더 있고 여자는 孔穴部(陰性)가 하나 더 있다. 따라서 형상(形狀)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양성에도, 음성에도 모두 양적차이(量的差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형상(形狀)에 있어서 남녀간의 양성-음성의 차이는 양적차이(量的差異)이다.
그러면 성상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성상에 있어서의 남녀간의 陽性-陰性의 차이는 양적차이(量的差異)가 아니라 질적차이(質的差異)이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상 즉 마음에 있어서 陽性인 명석(明晳)의 경우, 남녀가 다 함께 명석(明晳(陽))을 갖고 있으나 그 명석의 質이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 남자의 명석은 포괄적(包括的)인 경우가 많고 여자의 명석은 축소지향적(縮小指向的인 )경우가 많다. 재치(才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성상(性相)(마음)의 감정상의 슬픔(陰)이 과도(過度)할 경우, 남자의 슬픔은 비통(悲痛(억센 슬픔))으로 변하기 쉽고, 여자의 슬픔은 비애(悲哀(가냘픈 슬픔))로 변하기 쉽다. 성상의 의욕(意欲)에 있어서 적극성(陽)의 경우, 남자의 적극성은 상대방에게 경성감촉(硬性感觸)을 주기 쉽지만 여자의 적극성은 상대방에게 연성감촉(軟性感觸)을 주기 쉽다. 남녀간의 이러한 차이가 질적차이(質的差異)이다. 이것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1-4와 같다.
| 남자 | 여자 | |||
|---|---|---|---|---|
| 양성 | 지 | 명석 재치 |
포괄성 대범함 |
축소지향적 세밀함 |
| 의 | 적극성 | 경 성 | 연 성 | |
| 음성 | 정 | 슬 픔 | 비 통 무표정 |
비 애 쉽게 눈물흘림 |
이와 같이 성상(性相)(마음)에 있어서는, 남녀간에 陽性에도 질적 차이가 있고, 陰性에도 질적 차이가 있다. 이것을 음악(聲樂)에 비유하면 고음(高音)에 男子(tenor)와 여자(soprano)의 차이가 있고, 저음(低音)에도 남자(bass)와 여자(alto)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와 같이 성상(性相)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이 남녀간에 질적 차이(質的差異)가 보일 때, 남자의 양성-음성을 통틀어서 남성적이라 하고, 여자의 양성-음성을 통틀어서 여성적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여기에 남성적(男性的)인 양성-음성과 여성적(女性的)인 양성-음성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여기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는지 모른다. 즉 형상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차이가 양적 차이(量的差異)이기 때문에, 즉 남자는 양성이 量的으로 더 많고 여자는 陰性이 量的으로 더 많기 때문에, 남자를 陽性의 실체로 여자를 음성의 실체로 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성상(性相)에 있어서는 남녀의 차이가 질적 차이일 뿐, 남녀가 量的으로는 똑같이 陽-陰을 갖고 있는데 왜 남자를 양성의 실체, 여자를 음성의 실체라고 하느냐 하는 의문이다.
그것은 男女間의 陽的 및 陰的 차이가 量的이건 質的이건 간에, 양성과 음성의 관계는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의 관계(후술(後述))이기 때문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적극성(積極性)과 소극성(消極性)의 관계요, 능동성(能動性)과 피동성(被動性)의 관계요, 외향성과 내향성의 관계이다. 그런데 상술한 성상(性相)(지(知) 정(情) 의(意))의 속성인 陽陰의 남녀간의 질적 차이를 살펴볼 때, 그 질적 차이에 있어서도 남성의 陽과 여성의 陽의 관계 및 남성의 陰과 여성의 陰의 관계가 모두 주체와 대상의 관계임을 알게된다.
즉 상기한 例로 볼 때, 지적 기능(知的機能)인 陽에 있어서 남성의 명석의 포괄성(包括性)과 여성의 축소지향성(縮小指向性)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며, 정적기능(情的機能)인 陰에 있어서 남성의 悲痛(억센 슬픔)과 여성의 悲哀(가냘픈 슬픔)의 관계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또 의적 기능(意的機能)의 陽에 있어서 남성의 적극성(積極性)의 경성(硬性)과 여성의 적극성(積極性)의 연성(軟性)의 관계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이같은 남녀간의 陽과 陰의 질적 차이는 양적 차이(量的差異)때와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양과 음의 관계임을 뜻한다. 이상으로 男子을 양성실체(陽性實體), 女子를 음성실체(陰性實體)라고 부르는 이유를 밝혔다.
3) 성상(性相) 형상(形狀)의 속성으로서의 양성-음성과 현실문제의 해결
이상에서 양성-음성은 성상-형상의 속성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 사실이 왜 중요하냐 하면, 그것이 또한 현실문제 해결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현실문제란 남녀문제를 말한다. 남녀간의 성도덕(性道德)의 퇴폐문제(頹廢問題), 부부(夫婦)간의 불화문제, 가정파탄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양성-음성이 성상-형상의 속성이라는 말은, 성상(性相)-형상(形狀)과 陽性-陰性의 관계가 실체와 속성과의 관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실체와 속성에 있어서 선차적(先次的)으로 중요한 것은 실체이다. 속성이 의거하는 근거가 실체이기 때문이다. 실체없는 속성은 무의미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상-형상은 양성-음성이 의거(依據)하는 근거로서의 실체이며, 이 성상-형상이 없는 양성-음성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에 있어서의 성상-형상이란, 현실적으로는 성상-형상의 통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음과 몸의 통일, 생심(生心)과 肉心의 통일을 말하며, 인격(人格)의 완성을 뜻한다. 그리고 인간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볼 때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뜻한다. 여기서 인격(人格)의 완성(完成)과 男女間의 結合과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즉 남녀의 결혼에 있어서, 인격의 완성이라는 조건이 왜 필요한가 하는 문제이다. 陽性-陰性이 性相-形狀의 속성이다라는 命題에 따른다면 남녀는 결혼하기 전에 먼저 인격을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통일원리(統一原理)의 삼대축복(個性完成, 家庭完成, 主管性完成)에 있어서 개성완성(人格完成)이 가정완성(부부의 결합)보다 앞에 놓인 것은, 그 근거가 바로 이 陽性-陰性은 性相-形狀의 속성이다라는 명제에 있었던 것이며, 대학(大學)의 8조목(條目)中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平천하에 있어서 수신을 제가보다 앞에 놓은 것도, 大學의 저자가 무의식중에 이 명제(命題)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남녀관계에 관련된 각종 사회문제(性道德의 퇴폐, 가정불화, 이혼, 가정파탄, 부녀자 가출, 부녀자 인신매매 등)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가정완성전에 개성완성이 안 되었기 때문이요, 齊家전에 修身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그 해결이 가장 어려운 현실문제의 하나인 남녀문제(男女問題)는 가정완성(家庭完成)전에 즉 결혼전에, 먼저 남녀가 함께 인격을 완성(個體完成)함으로써, 또는 제가(齊家)하기 전에 먼저 수신(修身)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陽性-陰性이 性相-形狀의 속성이다라는 명제도 현실문제 해결의 또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원상(原相)중의 양성-음성에 관한 설명을 전부 마친다. 다음은 또 하나의 꼴로서의 속성(屬性)인 개별상(個別相)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 개별상(個別相)
1) 개별상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말한 성상(性相)-형상(形狀) 및 양성(陽性)-음성(陰性)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으로서, 이 두 종류의 상대적 속성은 모두 피조세계에 전개되어서 보편적으로 모든 개체속에 일일이 나타나고 있다. 성경(聖經)에 창세로부터 그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永遠)하신 능력과 신성(神性)(신상)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로마서 1:20)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사실을 두고 한 말인 것이다. 이와 같이 만물이 모두 보편적으로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을 보편상(普遍相)이라고 한다. 한편 만물은 개체마다 독특한 성질을 또한 지니고 있다. 광물, 식물, 동물 등의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천체(天體)도 항성이거나 유성이거나 모두 특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인간은 개인(個人)마다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체격(體格), 체질(體質), 용모(容貌), 성격(性格), 기질(氣質) 등이 개인마다 다르다. 만물과 인간의 개별적(個別的)인, 이와 같은 특성의 원인의 소재는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의 내부, 특히 내적 형상의 내부인 것이다. 하나님의 내적 형상의 내부에 있는 이같은 개별적 특성의 원인을 개별상(個別相)이라고 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속성(屬性)속에 있는 개별상이 피조물의 개체 또는 종류마다 나타난 것을 피조물의 개별상이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개별상을 개인별(個人別) 개별상(個別相)이라 하고, 만물은 종류에 따라서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만물의 개별상을 종류별(種類別) 개별상(個別相)이라고 한다.
2) 개별상(個別相)과 보편상(普遍相)
그런데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만물의 개별상(個別相)과 인간의 개별상이 그 범위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에 있어서의 개별상은 個人의 특성을 말하지만, 인간 이외의 만물(동물, 식물, 광물 등)의 개별상은 일정(一定)한 종류의 특성 즉 種差(특히 最下의 종차)를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 및 하나님의 子女로 지음받았고, 만물은 인간의 기쁨의 대상(對象)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피조물의 보편상과 개별상과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개별상이 아무리 개체의 특성이라 하더라도, 보편상과 별개의 특성이 아니며 보편상 그 자체가 개별화된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얼굴(容貌)이 각각 다른 것은 얼굴이라고 하는 형상(形狀)(보편상)이 개별화되고 특수화된 것이며, 인간의 개성이 각각 다른 것은 성격(性格), 기질(氣質)이라고 하는 성상(性相)(보편상)이 개별화되고 특수화된 것이다. 이리하여 인간에 있어서의 개별상이란 個人의 보편상이 개별화된 것이며, 이외의 피조물에 있어서는 종류의 보편상이 개별화된 것이다. 피조물에 있어서 이와 같이 보편상의 개별화가 개별상인 것은, 하나님의 내적 형상(內的形狀) 속에 있는, 피조물에 대한 개별화의 요인(要因)이 하나님의 성상-형상 및 양성-음성을 개별화시키는 요인(要因)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보편상을 원보편상(原普遍相)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내적형상(內的形狀) 속에 있는 개별상을 원개별상(原個別相)이라고도 부른다. 그리하여 피조물의 보편상과 개별상은 원보편상 및 원개별상에 각각 대응(對應)하고 있는 것이다.
3) 개별상(個別相)과 돌연변이(突然變異)
다음은 개별상(個別相)과 유전인자(遺傳因子)와의 관계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즉 일반 생물의 종차(種差) 및 인간의 개성과 유전인자(遺傳因子)와의 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진화론(進化論)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생물의 종차(種差)로서의 개별상의 출현은 돌연변이(突然變異)에 의한 신형질(新形質)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개성으로서의 개별상의 출현은 父의 DNA(遺傳情報)와 母의 DNA의 단편(斷片)들의 다양한 혼합(混合), 또는 조합(組合)에 의한 유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 볼 때, 진화론(進化論)은 창조과정의 현상론적(現象論的) 파악(把握)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생물(生物)에 있어서 돌연변이(突然變異)에 의한 신형질(新形質)의 출현이 실은 돌연변이의 방식을 취한 신개별상(新個別相)의 창조인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부모(父母)의 DNA의 혼합(조합(組合))에 의한 신형질의 출현도 실은 유전정보(遺傳情報; DNA)의 혼합(조합(組合))의 방식을 통한 인간의 신개별상(新個別相)의 창조인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이나 인간의 신개별상(新個別相)의 창조란 하나님의 내적 형상(內的形狀)에 있는 일정한 원개별상을 이에 대응하는 피조물(被造物)에게 신개별상(新個別相)으로서 부여(賦與)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4) 개별상(個別相)과 환경
다음으로 개별상과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개별상을 지닌 개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경과의 사이에 부단한 수수관계(授受關係)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즉 개별상을 지닌 개체는 환경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변화하면서 성장, 발전한다. 이것은 수수작용의 결과로서 반드시 합성체(合性體) 또는 신생체(新生體; 변화체)가 형성된다는 수수법(授受法)의 원칙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한 개체의 특성(個別相)은 원칙적으로 선천적(先天的)인 것이지만, 그 개별상의 일부는 환경요인에 의해 변화되어서 마치 후천적(後天的)으로 형성된 특성인 것처럼 느껴진다(예:일란성쌍생아(一卵性雙生兒)의 경우). 그러나 동일한 환경요인에 의해서 나타나는 특성에도 개인별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수수작용의 방식)에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개인차는 바로 개별상에 기인하는 개인차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개별상의 일부가 변형되어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특성처럼 나타난 것을 개별변상(個別變相; Individual Changed Image)이라고 한다.
5) 인간 개성의 존귀성
끝으로 인간의 개성의 존귀성에 관해서 말하고자 한다. 무릇 피조물의 특성은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屬性)중의 개별상(原個別相)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모두 귀한 것이지만 특히 인간의 개성은 더욱 존엄하고 신성하고 귀중한 것이다. 인간은 만물에 대한 주관주(主管主)인 동시에 영인체(靈人體)와 육신으로 구성된 이중체(二重體)이며 육신의 사후에도 영인체가 영생(永生)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 그 개성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實踐)하면서 창조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연의 개성은 그만큼 존귀하고 신성한 것이다. 흔히 인도주의(人道主義)가 인간의 인격이나 개성의 존귀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장은 개인의 특성의 신래성(神來性)이 인정되지 않는 한, 인간을 동물시하는 유물론적(唯物論的) 인간관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별상(原個別相)에 관한 이론도 또 하나의 인간의 개성(個性)이 왜 존중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 해결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以上으로 신상(성상(性相)-형상(形狀), 陽性-陰性, 個別相)에 관한 설명 전부를 마친다. 다음은 신성(神性)에 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