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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성체(個性體)

하나님은 우주(宇宙)의 창조(創造)에 있어서 먼저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구상하시고, 그것을 표준으로 삼아 실체대상으로 전개한 것이 피조세계이다. 따라서 피조만물은 원인자되시는 하나님의 원상(原相)을 상징적으로 닮은 개성체(個性體)요, 인간은 원상(原相)을 형상적으로 닮은 개성체이다. 개성체(個性體)란 원상의 개별상을 닮은 개성진리체라는 의미로서 인간은 우선 하나님의 보편상과 개별상을 함께 닮은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이다.

그런데 그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를 다룸에 있어서 개별상(個別相)에 중점(重點)을 두고 다룰 때의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를 개성체라고 한다. 개성체(個性體)로서의 인간의 개별상(個別相)은 동물이나 식물과는 달리 각개인(每個人)마다 그 개별성(個別性)이 현저(顯著)하며, 그 얼굴이나 성격 등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즉 동물이나 식물에 있어서는 종류별(種類別)의 개별상이지만 인간에 있어서는 개인별(個人別)의 개별상(個別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특히 인간에게 개인마다 독특한 개별상을 준 것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면서 특유의 자극적(刺戟的)인 기쁨을 얻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돌려드리는 최고의 가치(價値)를 지닌 존재로서 이러한 개별상도 인간의 본성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별상(個別相)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인간의 특성(特性)으로 나타난다. 첫째의 특성이 용모상의 특징이다. 세계에 65억의 인간이 있지만 같은 용모나 체격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둘째의 특성은 행동상의 특징이다. 인간의 행동양식(行動樣式)은 사람마다 다르다. 행동은 마음의 직접적인 표현이므로, 용모를 형상적인 특성이라고 한다면, 행동은 성상적인 특성의 표현(表現)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의 특성은 창작상(創作上)의 특징이다. 예술의 창작(創作) 뿐만 아니라, 창조성을 발휘하는 모든 활동은 모두 창작의 개념에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하루를 살았다면 그 1일의 생활의 발자취는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창작 또한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뿐만 아니라 인간 일생의 발자취도 하나의 작품(作品)(生의 작품)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시고, 행동을 보고 기뻐하시고, 또 그 작품(作品)을 보고 기뻐하시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개개의 인간을 보고 기뻐하신다는 것은 개개의 인간이 용모나 행동이나 창작으로써 하나님께 고유한 美를 돌려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성미((個性美)이다. 따라서 개성미(個性美)란 용모상의 개성미요, 행동상의 개성미요, 창작상의 개성미이다.

부모(父母)가 자식을 대할 때, 특성에 있어서 어떤 자식이라도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부모의 표현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간을 대할 때, 그 인간의 용모나 행동에서 그리고 창작생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개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즉 신래성((神來性)의 것이기 때문에 존귀하다. 인간이 인간의 개성(個性)을 귀히 여기고 상호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오늘날까지 인간의 개성(個性)은 무시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독재사회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때까지의 공산주의(共産主義)사회(社會)가 그 현저(顯著)한 예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개성을 유물론(唯物論)에 근거하여 환경의 산물로 보기 때문에 이를 경시(輕視)한다. 우리는 인도주의(人道主義)(humanism)가 인간의 개성을 존중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인간의 개성이 존중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이 인도주의(人道主義)에는 없기 때문에 철학을 가진 공산주의의 비판을 견뎌내지 못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서 통일사상은 인간의 개성은 우연적(偶然的)인 것도 환경의 산물(産物)도 아니며, 하나님의 개별상에서 유래(由來)된 것이기 때문에 즉 신래성(神來性)이기 때문에 존귀하다고 하는 확고한 신학적,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