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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적(歷史的)근거(根據)의 제시

다음은 역사적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가치관은 역사적(歷史的)으로도 실증될 수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는 자연현상이 투쟁에 의해 발전하듯이 인류(人類)역사도 역시 투쟁(계급투쟁)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역사는 투쟁에 의해서 발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역사의 발전은 어디까지나 주체와 대상(지도자와 대중)의 조화적인 수수작용에 의해 이루어져온 것이다.

역사상에 투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계급투쟁은 아니었다. 보다 선(善)한 세력과 보다 악(惡)한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가치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가치관과 가치관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천도(天道)에 보다 가까운 편의 가치관(선(善)편)과, 천도(天道)에서 보다 먼 편의 가치관(악(惡)편)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일시적(一時的)으로는 선(善)편이 악(惡)편에 패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결국은 천도(天道)에 가까운 선(善)편이 승리해 왔다. 맹자(孟子)도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악의 투쟁은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역사를 보다 선의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다(제8장 歷史論을 참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의 여러 주권들이 흥망(興亡)을 반복해온데 비하여 선(善)을 표방했던 종교는 계속하여 오늘날까지 존속(存續)해 왔다. 또 성인(聖人)이나 의인(義人)들이 비록 악(惡)의 세력들에 의하여 희생되는 수가 많았지만 그 대신 그 성인(聖人)이나 의인(義人)들의 가르침과 업적은 후세 사람들의 삶에 교훈(敎訓)과 귀감(龜鑑)이 되곤 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천도가 그대로 살아서 역사에 작용해왔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역사는 어떤 주권자라도 이 천도(天道)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과 만일 천도(天道)를 거역하게 되면 그 거역한 자가 비운(悲運)에 쓰러지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의 법칙은 역사의 출발점에서 이미 목표가 세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우주(宇宙)는 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이법(理法, 로고스)에 따라 창조되었다. 생물의 성장을 보아도 종자(種子, 또는 알)속에 이미 이법(理法)이 내재(內在)해 있고, 그 이법(理法)에 따라 종자는 성장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도 역시 출발점에 일정한 이념이 있었고, 그것을 목표로 하여 역사는 발전해 온 것이다. 즉 역사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역사의 출발점에 이미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신화(神話)나 설화(說話) 등에 상징적으로 표시된 인류나 민족의 이상(理想), 건국(建國)의 이상(理想)이었다.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류역사는 죄악사(罪惡史)로서 출발했으나, 하나님은 복귀해야 할 창조이상의 세계상을 상징(象徵)과 비유(比喩)가 섞인 일종(一種)의 신화형식으로 인간에게 알리곤 하셨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의 내용이나, 이사야서나 계시록 내의 예언적(豫言的) 기사, 그리고 한민족(韓民族)의 경우의 단군신화(檀君神話) 등이 그 예이다.

대개 오늘날까지의 인류의 이상(理想), 민족의 이상(理想)이란 선(善)하고 밝고 평화로운 세계, 행복한 세계의 실현이었다. 그것이 바로 천도(天道)에 맞는 세계의 구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의 출발점에 이미 역사의 목표(目標, 天道 세계의 실현)가 세워져 있음을 하나님은 신화(神話)나 예언(豫言)의 형식으로 가르쳐 주곤 하셨다. 따라서 역사가 목표로 삼고 있는 미래의 세계는 천도에 부합된 세계이며 가치관이 확립된 세계이다. 이상으로 신학적, 철학적, 역사적 근거의 제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