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문화사관(史觀)
제1차 세계대전 전(世界大戰 前)까지 유럽에 있어서 역사의 진보(進步)나 발전(發展)에 대한 신뢰(信賴)는 기본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있었으며, 역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직선적(直線的)이며 유럽 중심적인 역사상(像)을 깨뜨린 사람이 슈펭글러(O. Spengler, 1880~1936)였다.
슈펭글러는 역사의 기초를 문화라고 하면서 문화사관을 주창하였다. 그는 문화를 유기체(有機體)로 보았으며, 유기체인 이상(以上) 탄생과 함께 성장하고는 멸망(滅亡)하게 되어 있어서 문화의 사멸은 불가피(不可避)한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로마의 몰락에 대응(對應)하는 몰락의 징후(徵候)를 서양문명에서 발견하여 서양의 몰락을 예언했다. 이러한 서양의 몰락을 예지(豫知)하면서도 페시미즘에 빠지거나 불가피(不可避)한 운명(運命)에 움추리지 말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을 역설(力說)했다. 거기에는 니체와의 강한 연결이 있었다.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결정론적이다.
슈펭글러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獨自的)인 문화사관을 수립(樹立)한 사람이 토인비(A. J. Toynbee, 1889~1975)이다. 토인비에 의하면, 세계사를 구성(構成)하는 구극(究極)적인 단위는 지역도 민족도 국가도 아니며 개개의 문명이었다. 그리고 문명은 출생(出生; genesis), 성장(成長; growth), 좌절(挫折; breakdown), 해체(解體; disintegration), 소멸(消滅; dissolution)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문명발생(文明發生)의 원인은 자연환경(自然環境)이나 사회환경으로부터의 도전(挑戰; challenge)에 대한 인간의 응전(應戰; response)에 있다. 창조적(創造的) 소수자(少數者)가 대중을 인도하면서 문명을 성장시켜 가지만, 머지 않아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성을 상실(喪失)하게 되어서 문명은 좌절한다. 이때 창조적 소수자는 지배적 소수자로 전화(轉化)하며, 문명의 내부에서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변에는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생겨서 지배적 소수자에게서 이반(離反)한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혼란기를 맞게 되지만, 머지않아 지배적 소수자 중의 최강자에 의해 세계국가(世界國家)가 수립되면서 혼란기는 끝난다. 세계국가에 의한 압정하(壓政下)에서 내적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등종교(高等宗敎)를 키우고, 외적 프롤레타리아트(주변의 만족(蠻族)는 전투집단(戰鬪集團)(침략세력)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세계국가(世界國家), 고등종교(高等宗敎), 전투집단(戰鬪集團)의 3자(三者)가 정립(鼎立)한다. 얼마 안가서 고등종교는 지배층을 개종시킴으로써 세계종교가 되지만, 세계국가는 곧 붕괴되고 그와 더불어 문명은 죽음을 맞게 된다.
이리하여 하나의 문명이 소멸한 후,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침입(侵入)하는데, 이 외적 프롤레타리아트가 고등종교로 개종됨으로써 다음 대(次代)의 문명을 탄생시킨다. 이 문명의 계승(繼承)을 친자관계(親子關係)라고 한다. 세계사속에서 발생하여 충분히 성장한 문명은 21개인데, 현존(現存)하는 문명은 모두 그 3대(三代)째에 속하며 기독교문명(서양과 그리스正敎 圈)), 回敎문명(文明), 힌두교문명, 극동문명의 네가지 系譜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토인비가 주장한 3대에 걸친 문명의 계승은 통일사관에서의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라는 三代의 섭리적동시성(攝理的同時性)에 대응(對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토인비의 역사관의 특징은 결정론(決定論)을 배제하고, 비결정론(非決定論), 자유의지론(意志論)을 주장한데 있다. 즉 도전(挑戰)에 대하여 어떻게 응전(應戰)하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 나아갈 길은 결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인간이 미래(未來)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토인비는 인류역사의 미래상(未來像)으로서 명백히 신국(神國; Civitas Dei)을 그리고 있으나, 비결정론(非決定論)의 입장에서 신(神)의 나라냐 어둠의 나라냐 하는 미래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 자신의 존재(存在)의 법(法)인 사랑의 법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기희생은 인간 앞에 영적완성(靈的完成)이라고 하는 이상을 목표로 세워 놓고 인간에게 도전(挑戰)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에 있어서 이 도전(挑戰)을 수용할 것인가, 혹은 거부할 것인가는 완전히 자유인 것이다. 사랑의 법(法)은 인간이 죄인(罪人)이 될 것인가, 성인(聖人)이 될 것인가를 인류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즉 사랑의 법(法)은 인간의 개인적(個人的) 및 사회적(社會的) 생활을 하나님의 나라로의 전진 방안으로 삼든지 어둠의 나라로의 전진 방안으로 삼든지, 그 선택은 인류의 자유에 일임(一任)하고 있는 것이다.
토인비 역사관의 또 하나 특징은 근대사회가 망각(忘却)한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을 역사관속에 다시 도입(導入)했다는 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역사란,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섭리에 의해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의, 희미하고도 불완전한 영상(影像)에 불과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