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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조적존재(創造的存在)

하나님은 그의 창조의 능력(能力) 즉 창조성(創造性)으로써 우주를 창조했으며 그 창조성(創造性)을 인간에게도 부여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은 부여받은 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여기의 창조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창조성은 심정(心情)을 기반으로 한 창조의 능력이다. 이미 원상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주 창조에 있어서 원상내부(原相內部)에는 다음과 같은 2단계(二段階)의 수수작용이 행하여졌는바, 그 첫째는 내적 수수작용이요 둘째는 외적 수수작용이었다.

내적 수수작용은 심정에 의해 세워진 목적을 중심하고 내적 성상(內的性相)과 내적 형상(內的形狀) 사이에 벌어진 수수작용으로서 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로고스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외적 수수작용은 동일한 목적을 중심하고, 同로고스와 형상(본형상(本形狀)) 사이에 벌어진 수수작용으로서 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피조물이 生成되었던 것이다. 이 2단계(二段階)의 수수작용(授受作用)은 바로 2단계(二段階)의 발전적 사위기대의 형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성이란 결국 이 2단계(二段階)의 발전적 사위기대 형성의 능력, 즉 내적 발전적 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및 외적 발전적 사위기대 (外的發展的四位基臺) 형성(形成)의 능력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어떤 것을 만들 때 먼저 목적을 세우고 설계를 하거나 구상을 한다. 즉 내적 수수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 구상에 따라 물건을 만들게 된다. 즉 외적 수수작용을 행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창조성(創造性)을 주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심정을 터로 한 사랑으로써 만물을 주관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관이란 물적대상(物的對象) 즉 자연만물(自然萬物), 재화(財貨) 등과 인적 대상(人的對象)을 다루거나 다스리는 것을 뜻하며, 특히 만물 주관은 물질을 다루는 것, 즉 물질의 취급, 관리, 처리, 보존 등을 의미한다. 산업활동(産業活動)(一次産業, 二次産業, 三次産業), 정치(政治), 경제(經濟), 과학(科學), 예술(藝術) 등 물질을 취급하는 일체(一切)의 활동이 모두 이러한 만물주관에 포함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이러한 주관활동을 하는 것이 본연(本然)의 주관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완전히 계승(繼承)했더라면 이들 활동은 모두 하나님의 심정이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영위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라(창1:28), 즉 주관(主管)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주관(主管)하려면 만물(萬物, 자연)을 주관할 수 있는 주관주(主管主)로서의 자격(資格)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大주관주(主管主)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주관하실 수 있는 자격으로서 창조성(創造性)을 갖추고 계신 것과 같이,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주관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성(創造性)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 성장기간(成長期間)을 두시고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 인격적으로 완성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성장과정(成長過程)을 통하여 완성됨으로써만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여받아 가지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런데 주관은 본래 자기가 만든 것(자기 것)만을 주관하게 되어 있지, 타인(他人)이 만든 것(타인 것)을 함부로 주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인간은 만물 창조가 끝난 뒤에 지음받았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자식은 자라서 부모의 권한(權限)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로 하여금 주관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條件)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면서 성장하도록 명령(命令)하셨던 것이다. 그 조건(條件)이란, 인간도 우주의 창조위업(創造偉業)에 가담한 것과 동일한 가치의 조건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바로 인간(아담과 해와)이 자기의 책임분담(責任分擔)하에 자신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을 총합(總合)한 실체상(實體相)이며, 소우주이기 때문에 인간 한 사람의 가치는 우주의 가치에 맞먹는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책임분담으로 자기를 완성(完成)시킨다면 그 노력은 우주를 완성시킨 것(창조한 것)과 동일(同一)한 가치(價値)의 노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책임분담을 다하게 하신 이유였다. 즉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창조위업에 가담했다는 조건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책임분담에 의해서 완성토록 하셨다. 이러한 이유(理由)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에게 성장기간 동안에는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원리강론 1987, p. 85 : 性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계명(誡命)을 주신 이후,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일체 간섭(干涉)하지 않으셨다. 만일 간섭하게 되면 인간 책임분담(責任分擔)을 하나님 스스로 무시하는 입장이 되며, 미완성한 아담과 해와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하게 하는 모순을 초래(招來)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그 계명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하는 자격(資格)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계승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자기(自己)중심적(中心的)인 이성에 의한 창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個人)레벨의 창조일 경우에는 자기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가정레벨의 창조일 경우에는 자기가정의 이익(利益)만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국가레벨의 경우에는 자기 국가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창조활동(創造活動)은 거의 자기중심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또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사고방식을 지속(持續)해 왔다. 그 결과 자연파괴나 공해, 살육병기(殺戮兵器)의 개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심정을 중심으로 한 본래의 창조성(創造性)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정이 창조성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사랑을 동기로 하여 창조가 이루어져야 함을 뜻하며 올바른 가치(價値)觀에 따라 창조활동이 행하여져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과학자는 과학자이기 전에 먼저 가치적인 인간, 즉 인격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윤리가 자연과학의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이후(近代以後), 과학자(科學者)들은 객관적인 사실만을 탐구(探求)하면서 일체의 가치관을 배제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혼란상태(混亂狀態)가 오게 되었다. 국제과학통일회의가 개최될 때마다 문선생님이 과학자들에게 가치관을 다루도록 강조한 것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참다운 창조성(創造性)을 회복(回復)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자연(自然)을 사랑하고 인간의 가치(價値)를 재검토(再檢討)하고, 인간 상호간의 사랑 그리고 사랑의 근본(根本)인 하나님을 찾음으로써 참된 창조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