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통일사상에서 본 공산주의예술론의 오류(誤謬)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오류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원인은 예술을 작가(作家)의 개성(個性)을 살리면서 전체를 위한 창작 또는 자신을 위한 감상과, 미(美)와 기쁨의 창조활동으로 보지 않고, 당(黨)의 방침에 순응하면서 인민을 교육하는 어용수단(御用手段)으로서의 예술로 본 데 있다. 예술가는 작품속에서 개성(個性)을 최대한 발휘(發揮)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인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개성(個性)을 박탈하고 작품을 획일화(劃一化)시켜 버렸다. 따라서 거기에서 참다운 예술작품이 생길 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 원인은 하나님을 부정함으로써 예술활동의 근본 기준을 상실(喪失)해 버린 데 있다. 그 대신 당의 방침에 입각한 제멋대로의 기준을 세워서 예술가, 작가를 그 기준에 일치하도록 강요(强要)했던 것이다. 셋째 원인은 미(美)와 사랑이 표리(表裏)의 관계이기 때문에 예술과 윤리도 표리(表裏)의 관계여야 함을 모르는 데에 있다. 공산주의사회는 사랑의 윤리를 부정하기 때문에 예술은 사랑이 없는 예술 또는 공산당의 인민지배(人民支配)의 도구로서의 예술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넷째 원인은 예술이 결코 상부구조(上部構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예술을 상부구조로 본 데에 있다. 그 때문에 예술은 경제체계(經濟體系(土臺))의 시녀(侍女)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예술은 경제체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경제학비판(經濟學批判)의 마지막 부분의 서설(序說)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곤란(困難)한 것은 그리스의 예술이나 서사시가 사회적인 발전형태에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곤란한 것은 그것들이 우리들에게 아직도 예술적인 즐거움을 주고, 어떤 점에서는 규범(規範)으로서 그리고 도달(到達)할 수 없는 이상(理想)으로서의 의의(意義)를 갖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있다.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의하면, 그리스의 상부구조(上部構造)의 일부인 예술이나 문학이 지금쯤(마르크스 當時)은 형태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야 하며,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것에 아무런 흥미(興味)도 느낄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의 예술이나 일리아드(Iliad), 오디세이(Odysseia)와 같은 서사시(敍事詩)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생활의 규범(規範)으로까지 삼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물사관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곤란을 느낀다고 실토(實吐)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마르크스 자신이 토대(土臺)와 상부구조(上部構造)의 이론의 오류를 자증(自證; 스스로 인증)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진(眞)-선(善)-미(美)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욕망(基本的 欲望)이 있다. 이 욕망은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그리고 어느 시대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따라서 작품중에 진(眞)-선(善)-미(美)의 가치가 나타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만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리스의 예술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음은 그것에 크건 작건 간에 인간이 바라는 영원(永遠)한 진(眞)-선(善)-미(美)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동시대에 소련사회의 부패를 다같이 고발하였지만, 작풍(作風)에 있어서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작가, 고르키와 톨스토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고르키는 폭력(暴力)에 의하여 자본주의사회를 타도(打倒)하고자 공산주의에 동조(同調)하면서, 예술가의 사명(使命)은 혁명을 고무(鼓舞)하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예술가였다. 그리하여 그는 혁명운동(革命運動)을 미화(美化)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고르키의 작품인 어머니는 사회주의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한 노동자의 무학(無學)의 어머니가 혁명운동으로 투옥(投獄)된 외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일념(一念)에서, 계속해서 그 아들을 설득하려다가 도리어 그 아들에게 설득당하여 사회의 모순성(矛盾性)을 자각하고 드디어 혁명운동의 적극적(積極的)인 참가자가 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한편 톨스토이는 당시의 사회악(社會惡)을 고발하면서 그 해결의 길은 사랑에 의한 참다운 인간성(人間性)의 회복에 있다고 설파(說破)하였다. 톨스토이의 대표작의 하나가 부활(復活)이다. 배심원(陪審員)으로서 법정에 선 한 귀족청년이, 자기가 젊었을 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유혹(유혹(誘惑))한 하녀가 범죄하여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본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던 끝에 회개하여 그녀를 구할 결심을 한다. 드디어 그녀는 갱생(更生)되고 그 청년도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는 내용이다.
고르키가 택한 것은 외적인 사회혁명의 길이고, 톨스토이가 택한 것은 내적인 정신적(精神的) 혁명(革命)의 길이었다.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이었을까. 고르키가 택한 폭력혁명에의 길은 그 후 사회주의사회의 실태가 보여준 바와 같이 인간성의 억압(抑壓)과 관료주의(官僚主義)의 부패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톨스토이가 택한 길은 비록 사회전체를 구한다는 점에서는 성공치 못한 점이 있지만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점에서는 올바른 방향(方向)의 길이었다.
통일사상은 인간과 사회가 다 같이 본연의 모습으로 개혁(改革)되는 가장 올바른 길을 추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인간과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의 속성(屬性)을 정확히 앎으로써 본래의 인간의 모습, 본연의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방향(方向)을 향하여 인간과 사회를 개혁해 가면 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통일사상이 주장하는 새로운 예술은 하나님의 심정(心情)(사랑)을 중심으로하여 이상주의(理想主義)와 현실주의(現實主義)가 통일된 통일주의예술이다. 그것은 본연의 인간과 본연의 사회라는 이상(理想)을 향하여 현실을 개혁(改革)해 나아가는 예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