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근세(近世)의 가치관(價値觀)
중세가 지나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이렇다 할 새로운 가치관이 나타나지 않았다. 근세의 가치관은 그리스철학이나 기독교 가치관의 연장 또는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종래의 모든 가치관을 의심(疑心)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소위 회의주의(懷疑主義)는 아니며 회의(懷疑)를 통하여 보다 더 확실한 것을 알고자 하는 시도(試圖)였다. 그 결과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근본원리(根本原理)에 도달하였다. 그는 인간이 이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여기에 인간은 이성에 의해 정념(情念)을 지배하면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행위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도덕관(道德觀)이 생겨났다.
파스칼(B. Pascal, 1623~1662)은 인간을 위대함도 갖고 있고, 어리석음도 갖고 있는 모순(矛盾)的 존재(存在)라고 보았다. 그것을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는 가장 약하나 생각함으로써 가장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참 행복은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며 신앙에 의해서, 즉 심정(心情)에 의해서 하나님께 이르는 데에 있다고 주장했다.13) p.337
칸트(I. Kant, 1724~1804)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비판批判),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에서 각각 진(眞)-선(善)-미(美)가 어떻게 해서 성립하는가를 논하였다. 동시에 그는 이 3개의 비판에서, 인간은 이러한 각각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특히 선(善), 즉 도덕에 있어서 인간은 실천(實踐)이성으로부터 오는 무엇 무엇을 하라라는 무조건적인 명령-정언명법(定言命法)-에 따라 행위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벤담(J. Bentham, 1748~1832)은 고통이 없는 쾌락의 상태를 행복이라 하면서 최대다수(最大多數)의 최대행복(最大幸福)이라는 원리를 세웠다. 이것이 그의 공리주의(功利主義)이다. 그는 쾌(快)와 고(苦)를 양적(量的)으로 계산함으로써 인간 행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벤담의 공리주의(功利主義)는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생긴 가치관으로서 형상적(形狀的)인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1855)는 인간은 미적(美的) 실존(實存)단계, 윤리적(倫理的)실존(實存)단계를 거쳐서 종교적실존단계(宗敎的實存段階)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실존의 3단계를 주장했다. 즉 인간은 쾌락속에서만 사는 것(美的단계)은 아니며, 또 윤리를 지키면서 양심적으로 사는 것(윤리적 단계)만으로도 불충분하며,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종교적 단계)고 역설(力說)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참다운 기독교의 가치관을 부흥시키려고 애썼던 것이다.
니체(F. Nietzsche, 1844~1900)는 19세기말의 유럽을 모든 가치(價値)가 붕괴되어 가는 니힐리즘의 시대라고 보았다. 그에 있어서, 기독교는 강자를 물리치고 인간을 평균화한 노예도덕(奴隷道德)이며, 니힐리즘을 초래한 최대의 원인자였다. 그래서 그는 권력(權力)에의 의지(意志)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에서 강력(强力)하게 살자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었다.
진(眞)-선(善)-미(美)의 가치를 통일적으로 다루면서 가치를 철학의 중심문제로 취급한 사람은 新칸트학파(學派)의 빈델반트(W. Windelband 1948~1915)였다. 칸트는 사실문제와 권리문제를 구별하였으나 이것을 이어 받은 빈델반트는 사실판단(事實判斷)과 가치판단(價値判斷)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철학의 임무는 가치판단을 취급하는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판단(事實判斷)은 사실을 개관적으로 인식한 명제(命題)이며, 가치판단(價値判斷)은 사실에 대하여 주관적인 평가를 내린 명제(命題)이다. 예컨대, 이 꽃은 붉다라든가, 그는……… 을 하였다라는 것은 사실판단이며, 이 꽃은 아름답다라든가, 그 행위는 선(善)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치판단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이 다루어 온 것은 사실판단(事實判斷)이고, 철학이 다루어 온 것은 가치판단(價値判斷)이라고 하면서 사실과 가치를 완전히 분리해서 다루었던 것이다.
금세기에 이르러 언어(言語)의 논리적(論理的) 분석(分析)을 철학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분석철학이 생겨났다. 분석철학은 가치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① 가치는 직각(直覺)에 의해 알 수밖에 없다. ② 가치판단이란 발언자의 도덕적인 찬성(贊成)이나 혹은 불찬성(不贊成)이라는 감정의 표명에 불과하다. ③ 가치론(價値論)은 가치언어의 분석에만 의의(意義)가 있다. 이리하여 분석철학은 대체적으로 철학에서 가치관을 배제하려고 하였다.
듀이(J. Dewey, 1859~1952)에 의해 대표되는 프래그머티즘은 생활에 대한 유용성(有用性)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진(眞)-선(善)-미(美)와 같은 가치(價値)개념(槪念)도 사물을 유효하게 처리하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어서,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비록 동일인물(同一人物)에 있어서도 때에 따라 달라진다. 이같은 듀이의 입장은 상대적(相對的)인 가치다원론(價値多元論)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의 가치관(價値觀)을 살펴보자.
공산주의의 가치관으로서는 예컨대 투가리노프(B. P. Tugarinov, 1898~)의 다음과 같은 정의(定義)가 있다. 가치(價値)란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 또는 계급에 속한 사람들에게, 현실의 것으로서 또는 목적 내지 이상으로서 유용하고 필요한, 자연 및 사회의 현상이다."즉 공산주의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유용하다는 것이 가치의 기준이었다. 여기에서 부르주아的 가치관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존의 종교적 가치관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 공산주의 가치관의 전제(前提)가 되고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도덕이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집단생활을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헌신, 복종(服從), 성실, 동지애, 상호부조 등이 그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