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통일체(統一體)
인간이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인간이 마음과 몸의 이중체(二重體), 즉 성상-형상의 통일체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성상과 형상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로 인간은 우주(宇宙)를 총합(總合)한 실체상(實體相)이다. 즉 인간은 성상과 형상에 있어서 각각 동물, 식물, 광물의 성상과 형상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둘째로 인간은 영인체(靈人體)와 육신의 이중적 존재(二重的存在)이다. 셋째로 인간은 마음과 몸이 통일을 이루고 있는 심신통일체(心身統一體)이다. 그리고 넷째로 인간은 이중(二重)의 마음, 즉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이중심(二重心)의 통일체로서 이중심적(二重心的) 존재(存在)이다.
여기서 인간이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넷째의 생심과 육심의 이중심적(二重心的) 존재(存在)라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그리하여 본항(本項)에서 다루는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통일체는 바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통일체와 같은 뜻이 된다. 여기서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이 모두 마음(성상(性相))인데도 불구하고,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관계를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관계로 표시하는 것은, 생심(生心)은 영인체(靈人體) 즉 성상(性相)의 마음이요, 육심(肉心)은 육신(形狀)의 마음이어서, 생심과 육심의 관계는 영인체(靈人體)와 육신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에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기능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생심(生心)의 기능(機能)은 진선미(眞善美)와 사랑의 생활, 즉 가치생활(價値生活)을 추구한다. 여기서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진(眞)·선(善)·미(美)의 기반이 되고 있다. 따라서 사랑을 중심으로 한 진선미(眞善美)의 생활이 가치의 생활이다. 인간의 가치 생활에는 인간 자신이 가치를 추구하면서 기뻐하는 면도 있으나 가치를 실현하여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보다 더 본질적(本質的)인 면이다. 따라서 가치 생활이란 위하여 사는 사랑의 생활, 즉 가정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사는 사랑의 생활이다. 그리고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한편 의식주(衣食住)나 성(性)의 생활, 말하자면 물질적(物質的)인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육심(肉心)의 기능이다. 물질 생활은 개인을 중심으로 한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은 본래,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여기서 생심(生心)이 주체요 육심(肉心)이 대상이다. 영인체가 주체요, 육신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육심이 생심을 따르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생심과 육심이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지만, 생심이 주체, 육심이 대상의 관계에 있을 때의 인간의 마음이 본심이다. 육심이 생심을 따른다는 것은, 가치(價値)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생활을 제1차적인 것으로 하고, 물질을 추구하는 생활을 제2차적인 것으로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가치(價値)의 생활이 목적이고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은 그 목적실현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육심(肉心)이 생심(生心)을 따르고 생심(生心)이 제 기능(機能)을 잘 하면 영인체와 육신은 서로 공명한다. 이 상태가 인격(人格)을 완성(完成)한 상태이며 곧 본연의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墮落)했기 때문에,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의 본래의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상(對象)이 되어야 할 육심이 주체의 입장에 서게 되었고, 주체가 되어야 할 생심이 대상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이 목적이 되었고, 가치의 생활은 그 의식주를 위한 수단처럼 되어서 2차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즉 사람을 사랑한다거나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행위는 부(富)를 얻는다든가, 지위를 얻는다는 목적 때문에 행하는 행위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일상적인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가치의 생활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치 생활을 자기중심의 물질 생활을 위한 수단(手段)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육심(肉心)이 주체, 생심(生心)이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심과 육심의 본래의 관계가 역전(逆轉)되어 버린 것이 오늘의 실정(實情)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回復)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거꾸로 된 관계를 본래의 관계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인간이 수도생활(修道生活)을 해야 할 필연적(必然的)인 이유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모든 종교는 먼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勝利)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예컨대 공자(孔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했고,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으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자기(自己)와의 싸움에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은 금식(禁食, 단식), 철야(徹夜) 등의 수도(修道)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육심을 생심에 굴복시켜서 진선미(眞善美)의 생활을 앞세우고,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을 뒤세운 채 살아가는 것이 생심과 육심의 통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육심이 생심을 누르고 자기중심적인 의식주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고통(苦痛)과 불행(不幸)이 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본심(本心), 즉 마음이란, 요컨대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이 수수작용을 해서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상(性相)內의 내적 사위기대(四位基臺)를 닮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본심(本心)의 선차적(先次的)인 기능은 생심(生心)에 의한 사랑의 생활이며 진선미(眞善美)의 가치(價値)를 추구(追求)하는 생활이다. 따라서 인간은 바로 애적인간(愛的人間; homo amans)인 것이다. 이런 가치의 생활이 바로 진실(眞實)의 생활이며, 윤리적(倫理的)이며 도덕적(道德的)생활이며 예술적 생활이다. 그리고 본심의 후차적(後次的)인 기능은 육심(肉心)에 의한 의식주(衣食住)의 생활, 즉 물질적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