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교(佛敎)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불교의 근본적인 덕목(德目)은 자비이지만,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행(修行)생활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은 수행생활을 통하여 성문(聲聞ː부처의 설법을 듣고 4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 阿羅漢의 제자가 되기를 이상으로 하는 佛道修行者), 연각(緣覺ː부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깨달아 자유경에 도달한 성자)을 통과하고, 보살(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으로서 위로는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일체의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의 버금되는 성인), 佛陀(스스로 불교의 大道를 깨달은 성인)에 이르게 되며, 자비는 보살, 불타의 단계에서 이를 실천하게 된다. 성문(聲聞), 연각(緣覺)의 과정에서는 아직 자비를 실천하는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 즉 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현실생활에 집착하고 있다. 이것이 苦의 원인이다. 따라서, 고(苦)를 없애기 위해서는 수행(修行)생활을 통하여 집착(執着)을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착에서 떠나고, 고(苦)에서 해방되는 것이 곧 해탈(解脫)이다. 이처럼 해탈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참된 자비(慈悲)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가의 사상을 체계화한 것이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이다. 사제(四諦)란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를 말한다. 고제(苦諦)란 현세에서의 삶은 모두 고통이다라는 가르침이다. 집제(集諦)는 고(苦)의 원인은 끝없는 집애(執愛, 渴愛)에 있다라는 가르침이다. 멸제(滅諦)는 열반의 경지를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으로서 苦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는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도제(道諦)는 열반에 이르는 데는 올바른 수행(修行)의 길이 있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그 길이 팔정도(八正道)인 바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의 항목(要目)이 있다.
① 정견(正見) - 모든 편견을 버리고 만물의 진상을 바르게 판단하라 ② 정어(正語) - 바르게 말하라 ③ 정업(正業) - 살생이나 도둑질을 하지 말라 ④ 정명(正命) - 正法에 따른 바른 생활을 하라 ⑤ 정념(正念) - 잡념을 떠나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언제나 잊지 말라 ⑥ 정정(正定) - 번뇌로 인한 어지러운 생각을 털어버리고 바르게 정신을 집중시켜 마음을 안정시켜라 ⑦ 정사유(正思惟) - 바르게 생각하라 ⑧ 정정진(正精進) - 일심(一心)으로 노력하여 아직 발생하지 아니한 악을 낳지 못하게 하고 선(善)을 발생하게 하라.
그리고 인간에게서 괴로움이 생긴 원인을 추구하고, 12事項의 계열(系列)을 세운 것이 12인연(因緣ː12緣起)의 가르침이다. 그것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괴로움의 근본원인은 갈애(渴愛)로서 그 안쪽에 무명(無明)이 있다고 한다. 무명(無明)이란 진여(眞如)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데, 고통이나 번뇌는 본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서, 이 無明에서 일체의 번뇌가 생긴다는 것이다.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는 보살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의 덕목이 있는데, 그것이 다음과 같은 육바라밀(六波羅密)(六波羅密多)이다.
① 보시(布施) - 자비심으로 남에게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것 ② 지계(持戒) - 계율을 잘 지키는 것 ③ 인욕(忍辱) - 고통을 참는 것 ④ 정진(精進) - 불도(佛道)를 게을리 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 ⑤ 선정(禪定) - 정신통일을 하는 것 ⑥ 지혜(智慧) - 옳고 그른 것, 선악(善惡)과 시비를 판단하는 것
이상의 팔정도(八正道)나 육바라밀(六波羅密) 등의 덕목의 근본이 되는 것은 자비(慈悲)이다. 그리고 자비의 기초가 되는 것이 우주의 본체로서의 진여(眞如)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불교의 가치관도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불교 가치관의 설득력이 약화(弱化)된 원인은 불교의 교리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우주(宇宙)의 본체라고 하는 진여(眞如)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치 않다는 것, 제법(諸法, 宇宙萬象)이 어떻게 생성(生成; 연기(緣起))되었는가 하는 것이 분명치 않다는 것, 무명(無明)은 왜 생겼는가에 대한 근본적 해명이 없다는 것, 현실문제(人生문제(問題), 사회(社會)문제(問題), 역사문제(問題))의 근본적 해결이 수도(修道)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수도생활이 현실문제의 해결과 연결되어 있지않다는 것 등이다.
그 외에 공산주의에 의한 도전이 또한 있어 왔다. 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공격(攻擊)하곤 했다. 현실사회에는 착취, 억압, 빈부의 격차 등 사회악이 충만해 있는데 그 원인은 無明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사회의 체제적(體制的) 모순(矛盾)에 있다. 불교의 수행은 개인의 구제(救濟)를 위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요, 문제해결의 회피인 것이다. 현실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이와 같이 공격(攻擊)해 올 때 불교(佛敎)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유효(有效)한 반론(反論)을 제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