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식(認識)의 기원(起源)
모든 지식(知識)은 경험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경험론이며, 거기에 비해서 참다운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이성의 작용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보는 것이 이성론 또는 합리론(合理論)이다. 양자 모두 17~18세기(世紀)에 나타났는데, 영국의 철학자들은 경험론을 옹호하였고, 대륙의 철학자들은 이성론을 옹호하였다.
(1) 경험론
1) 베이컨
경험론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이다. 그의 저명한 노작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 1620)에서 그는 전통적인 학문은 무용(無用; 쓸데없는)한 말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적으로는 공허(空虛)하다고 하면서 올바른 인식은 자연의 관찰과 실험에 의해 얻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때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선인적(先入的)인 편견(偏見)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편견으로서 네 가지의 우상(偶像; Idola)을 들었다.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偶像; Idola Tribus)이다. 이것은 사람의 지성(知性)은 평평하지 않은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성(本性)을 왜곡해서 반사하기 쉽다고 하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빠지기 쉬운 편견을 말한다. 예컨대 자연을 의인화(擬人化)시켜서 보는 경향이 그것이다.
둘째로, 동굴(洞窟)의 우상(偶像; Idola Specus)이다. 이것은 마치 동굴(洞窟)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개인(個人)의 독특한 성질이나 습관(習慣), 좁은 선입관(先入觀) 등에 의해서 생기는 편견을 말한다.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偶像; Idola Fori)이다. 이것은 지성(知性)이 언어에 의하여 영향받는 데서 오는 편견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전혀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공허(空虛)한 논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偶像; Idola Theatri)이다. 이것은 권위나 전통에 의지하려는 데서 오는 편견(偏見)을 말한다. 예컨대 권위있는 사상이나 철학에 무조건 의지하려 하는 데에서 오는 편견(偏見) 따위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우상(偶像)을 제거한 후, 우리들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개개의 현상(現象)속에 있는 본질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베이컨은 귀납법(歸納法)을 제시하였다.
2) 로크
경험론을 체계화(體系化)한 사람은 로크(J. Locke, 1632~1704)이며, 그는 주저(主著; 주요저서)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에서 그의 주장을 상세히 전개하였다. 그는 먼저 인식에 있어서 생득관념(生得觀念)을 배격했다. 생득관념(生得觀念)이란,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인식에 필요한 관념을 말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白紙; tabula rasa)와 같은 것이며, 백지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남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간 관념(觀念)은 마음의 백지(白紙)에 그대로 적혀진다(인식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인식은 외부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관념(觀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관념은 두 가지의 방향에서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데, 하나는 감각(感覺; sensation)의 방향이며, 또 하나는 반성(反省; reflection)의 방향이다. 이것이 로크의 인식의 기원(起源)이다. 즉 로크에 있어서는, 인식의 기원은 관념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반성(反省)에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로크의 경험론은 감각이나 반성을 통한 경험이 인식의 기원(起源)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감각(感覺)이란, 감각기관(感覺器官)에 비치는 대상의 지각(知覺)을 말한다. 즉 황(黃), 백(白), 열(熱), 냉(冷), 유(柔), 견(堅), 고(苦), 감미(甘味) 등의 관념을 말한다. 반성이란, 마음의 작용을 말하며 생각한다, 의심한다, 믿는다, 추리한다, 의지한다 등이 그것이다. 이 반성(反省) 때에도 관념(觀念)이 얻어진다.
그런데 관념(觀念)에는 단순관념(單純觀念; simple idea)과 복합관념(複合觀念; complex idea)이 있다고 한다. 단순관념(單純觀念)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 얻어진, 따로 따로 떨어진 관념(觀念)이며, 그것들이 오성(悟性)의 작용에 의해 결합(結合), 비교(比較), 추상(抽象)됨으로써 보다 고차적인 관념을 이룬 것이 복합관념(複合觀念)이다.
그리고 단순관념(單純觀念)에는 고체성(固體性; solidity), 연장(延長; extension), 형상(形象; figure), 운동(運動; motion), 정지(靜止; rest), 수(數; number)와 같이 대상자체(對象自體)에 객관적으로 구비(具備)되어 있는 성질과, 색(色; color) 냄새(smell) 맛(taste) 소리(sound)와 같이 주관적(主觀的)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성질이 있다고 하면서 전자(前者)를 제일성질(第一性質), 후자(後者)를 제2성질(第二性質)이라고 불렀다.
복합관념(複合觀念)에는 양상(樣相; mode), 실체(實體; substance), 관계(關係; relation)의 세 가지가 있다. 양상(樣相)이란, 공간의 양상(거리, 평면, 도형 등), 시간의 양상(계기, 지속, 영원 등), 사유(思惟)의 양상(지각, 상기, 추상), 수(數)의 양상, 힘의 양상 등, 사물의 상태나 성질 즉 속성을 나타내는 관념들이다. 실체란 단순관념을 일으키는 물자체(物自體)를 말하며, 여러 성질(性質)을 지니고 있는 기체(基體; substratum)에 대한 관념이다. 그리고 관계란, 인과(因果)의 관념과 같이 두가지의 관념을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관념(동일, 차이, 원인, 결과 등)을 말한다.
로크는 인식(認識)이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결합(結合)과 일치(一致) 또는 불일치(不一致)와 배반(背反)의 지각(知覺)'3) 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대개 진리(眞理)란 관념의 일치(一致), 불일치(不一致)를 그대로 언어로 표기한 것이다'4) 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관념을 분석함으로써 인식의 기원(起源)의 문제에 답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로크는 직각적(直覺的)으로 인식되는 정신과 논리적으로 인식되는 신(神)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물체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각적으로밖에는 알 수 없으므로 확실성을 지닐 수는 없다고 하였다.
3) 버클리
버클리(G. Berkeley, 1685~1753)는 로크가 말한 물체(物體)의 제1성질(第一性質)과 제2성질(第二性質)의 구별을 부정하고, 제1성질도 제2성질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이라고 하였다. 예컨대 거리(距離)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연장(延長)), 즉 第一성질(性質)의 관념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거리의 관념은 다음과 같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일정한 거리의 저편에 있는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고, 다음에 그곳까지 발바닥으로 땅을 밟으며 걸어가서,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할 때, 어떤 종류의 시각(視覺)은 이윽고 어떤 종류의 촉각(觸覺; 예컨대 걸을 때의 발바닥의 촉각)을 수반한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게 된다. 거기에 거리의 관념이 생긴다. 즉 우리들은 연장(延長)으로서의 거리를 그대로 객관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버클리는 로크가 말한 여러 성질(性質)의 담하체(擔荷體)로서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사물은 관념의 집합(集合; collection of ideas)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존재(存在)하는 것이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버클리는 물체라는 실체(實體)의 존재를 부정했으나, 지각(知覺)하는 실체로서의 정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4) 흄
경험론을 궁극에까지 추구한 사람이 흄(D. Hume, 1711~1776)이었다. 그는 우리의 지식(知識)은 인상(印象; impression)과 관념(觀念; idea)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였다. 인상(印象)이란 감각과 반성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을 말하며, 관념(觀念)이란 인상이 없어진 후에 기억 또는 상상에 의해 마음에 나타나는 표상(表象)을 말한다. 그리고 인상과 관념의 양자를 총칭하여 지각(知覺; perc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단순관념(單純觀念)의 복합에 있어서 유사(類似; resemblance), 접근(接近; contiguity), 인과성(因果性; cause & effect)을, 세 가지의 연상법칙(聯想法則)으로 들었다. 여기서 유사와 접근에 관한 인식은 확실한 것이어서 문제는 없으나 인과성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인과성(因果性)에 관한 예로서, 번개가 친 뒤에 우레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면, 이때 보통 사람들은 번개가 원인이고 우레 소리는 그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흄은 단순한 인상(印象)으로서의 양자를 원인과 결과로서 결합시킬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고 하면서, 인과성(因果性)의 관념은 주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의해 성립(成立)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닭이 울고 난 후 잠깐 있다가 태양이 뜬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이지만, 이 때 닭이 우는 것이 원인이고, 태양이 올라오는 것이 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인과성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인식은 그와 같이 주관적인 습관이나 신념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懷疑論)에 빠져 버렸다. 그는 또 실체성(實體性)의 관념에 대해서도 버클리와 마찬가지로 물체라는 실체의 존재를 의심(疑心)하였다. 또한 그는 정신(마음)이라는 실체의 존재까지도 의심하였으며, 정신이란 지각(知覺)의 묶음(束 : bundle of perceptions)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2) 이성론
이와 같은 영국의 경험론에 대해서, 감각(感覺)에 의해서는 올바른 인식(認識)이 불가능하며 이성에 의한 연역적(演繹的), 논리적(論理的)인 추리에 의해서만 올바른 인식이 얻어진다고 보는 입장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 등을 중심한 대륙의 이성론(合理論)이다.
1) 데카르트
이성론의 시조(始祖)로 알려지고 있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참된 인식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의심(疑心)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이 소위 그의 방법적 회의(方法的 懷疑; methodical doubt)이다.
그는 먼저 감각이 우리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감각적(感覺的)인 것을 의심하였다. 왜 이러한 방법을 취하였을까. 그것은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의심해 보고, 그리고서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실(眞實)이며, 진리(眞理)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한 모든 것을 의심(疑心)해 보고 또 의심해 보았다. 그 결과 한가지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음을 그는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의심한다(思惟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命題)를 세웠던 것이다. 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存在)한다라는 명제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철학의 제1원리(第一原理)로서,5) 이 명제(命題)가 틀림없이 확실한 것은 이 인식이 명석(明晳; clear)하고 판명(判明; distinct)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우리들이 극히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되는 것은 모두 참(眞)이다'6) 라는 일반적규칙(一般的規則)(第二原理)이 도출된다.
여기에서 명석(clear)이란, 사물이 정신에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고 판명(判明; distinct)이란 명석하면서 다른 사람과 확실히 구별되어 혼동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7) 명석의 반대가 애매(曖昧; obscure)이며, 판명의 반대가 혼동(混同; confused)이다. 이 규칙에 따라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정신과,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물체의 존재가 확실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이 제1원리와 제2원리에서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이 성립된다. 그것은 제1원리에서 마음(思惟)의 실제(實在)가, 그리고 제2원리에서 물질(연장)의 실재가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석하고 또 판명한 인식이 확실한 것으로 보증되기 위해서는, 악령(惡靈)이 몰래 사람을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하다. 성실한 하나님이 인간을 속인다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하면 인식에 잘못이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신(神)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첫째, 하나님의 관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득관념(生得觀念;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관념, 本有觀念)이지만, 그 관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원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
둘째,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존재(存在)(하나님)의 관념을 가진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셋째, 가장 완전한 존재자(하나님)의 개념은 그 본질로서의 실체가 필연적(必然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함(包含)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입증된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인 무한(無限), 전지(全知), 전능(全能)이 명백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로서 성실성(誠實性; veracitas)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석-판명한 인식에 확실한 보증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하나님과 정신(精神)과 物體(물질)의 존재를 확실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그 중에서 참다운 의미에서의 독립적인 존재는 하나님뿐이며, 정신과 물체(物體)는 하나님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정신과 물체는 각각 사유와 연장을 그 속성으로 하는, 서로 전적으로 독립한 실체라고 하면서 그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하였다.
이상과 같이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인식이 틀림없이 확실하다는 것을 논증하였는데, 그는 그것으로써 수학적 방법을 터로 하는 합리적인 인식의 확실성까지도 주장하였던 것이다.
2) 스피노자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도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엄밀한 논증(論證)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기하학적 방법(幾何學的 方法)을 철학에 사용하여 논리적인 이론전개(理論展開)를 하려고 하였다.
이성에 의해서 일체의 진리를 인식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스피노자 철학의 전제(前提)이다. 즉 이성에 의해 영원(永遠)한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필연의 관계에서 전체적, 직각적(直覺的)으로 사물을 파악할 때 참다운 인식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상(相) 아래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 필연(必然)의 과정에서(필연의 연속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인간은 덧없는 사물(事物), 흘러가는 현상에 집착해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게 되며, 오히려 지금까지 덧없는 것으로 알았던 사물이나 현상,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들까지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표현으로서 귀(貴)한 것으로 파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참다운 생명(生命)을 얻게 되고 완전에 도달하며, 무한(無限)한 기쁨, 참다운 행복(幸福)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의 상(相) 아래에서 사물을 파악한다는 말의 뜻이다.
또한 이것은 명석-판명한 이성과 영감(靈感)에 의하여 얻어지는 자각(自覺)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식을 감성지(感性知), 이성지(理性知), 직각지(直覺知)의 셋으로 나누었다. 그 중, 지성(知性)에 의한, 질서가 없는 감성지(感性知)는 불완전한 것이며, 이성지(理性知)와 직각지(直覺知)에 의해서 참다운 인식이 성립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직각지(直覺知)란, 어디까지나 이성(理性)에 근거한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을 각각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을 그 속성으로 하는, 서로 독립된 실체라고 생각한데 대하여, 스피노자는 실체는 하나님 뿐이며, 사유(思惟)와 연장(延長)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능산적(能産的) 자연(自然; natura naturans)과 소산적(所産的) 자연(自然; natura naturata)의 관계로 보았으며, 양자는 분리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자연이다라고 하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사상(思想)을 전개하였다.
3)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도 수학적방법(數學的方法)을 중요시하고 소수의 근본원리에서 모든 명제(命題)를 이끌어 내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는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眞理)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즉 첫째로, 순수(純粹)하게 이성에 의해 논리적으로 파악(把握)되는 것, 둘째로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나누어서 전자(前者)를 영원의 진리 또는 이성의 진리라고 부르고, 후자를 사실의 진리 또는 우연의 진리라고 불렀다. 이성의 진리를 보증하고 있는 것은 동일률(同一律)과 모순률(矛盾律)이며, 사실의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충분한 이유(理由)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충족이유률(充足理由律)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진리의 구별은 인간의 지성(知性)에 대해서만 해당되며, 인간에 있어서 사실의 진리로 간주되는 것도, 하나님은 논리적(論理的) 필연성에 의해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에 있어서는 궁극적(究極的)으로 이성적인 인식이 이상적인 인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또 참다운 실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宇宙)의 살아있는 거울(鏡)로서의 모나드(monade, 單子)라고 하였다. 모나드는 지각(知覺)과 욕구의 작용을 가진 비공간적인 실체이며, 무의식적인 미소지각(微小知覺; petite perception)에서 그 집합(集合)으로서의 통각(統覺; apperception)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나드에는 물질적 차원의 잠든 모나드, 감각과 기억을 가진 동물차원의 혼(魂)의 모나드(또는 꿈꾸는 모나드), 보편적인식을 가진 인간 차원의 정신(精神)의 모나드라는 3단계의 모나드가 있으며, 최고 차원의 모나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4) 볼프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기조(基調)로 하면서, 이에 더하여 이성적(理性的)인 입장을 체계화한 사람이 볼프(C. Wolff, 1679~1754)이다. 그런데 그의 이론의 체계화 과정에서 라이프니츠의 참정신이 희미해졌거나 왜곡되었으며, 또한 라이프니츠의 주요 부분이 그의 이론체계에서 빠졌던 것이다. 특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論이나 예정조화론은 왜곡(歪曲)되었다. 칸트는 처음에 이 볼프학파에 속해 있었지만 후에 그를 합리주의적(合理主義的)인 독단론의 대표자라고 하면서 예리하게 그를 비판했다. 또한 볼프는 근본원리에 있어서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인도되는 이성적(理性的)인 인식이야말로 참다운 인식이라고 하면서, 모든 진리는 同一律(모순율(矛盾律))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에 관한 경험적 인식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으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과 경험적인식(經驗的認識)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며, 경험적인식은 참다운 인식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대륙의 이성론은 사실에 관한 인식을 경시(輕視)하고, 모든 것을 이성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결국 볼프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