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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관교육(主管敎育) : [지식교육(知識敎育), 기술교육(技術敎育), 체육(體育)]

1) 주관성(主管性) 완성(完成)을 위한 교육

마지막으로 주관교육은 주관성 완성을 위한 교육이다. 주관성 완성을 위해서는, 먼저 주관의 대상에 대한 정보(情報), 즉 지식(知識)을 습득(習得)해야 하는 바, 이것을 위해서 첫째로 지식교육(知識敎育)이 필요하다. 다음은 대상을 주관하는데 필요한 창조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기술을 습득(習得)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이 기술교육(技術敎育)이다.

그리고 주관(主管)을 잘 하려면 주관의 주체인 인간은 체력을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한 교육이 체육(體育)이다. 이상(以上)의 지육(知育), 기육(技育), 체육(體育)을 합해서 주관교육(主管敎育)이라고 한다. 한편 지육(知育)에 있어서 주관에 필요한 지식과 학문은 주관(主管)의 대상의 영역(領域)에 따라서 자연과학을 위시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광범위한 分野에 걸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분야 등의 활동도 모두 만물주관의 개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기육(技育)에 있어서의 기술은 만물주관의 직접적인 수법(手法)으로서 주관교육의 중심이 되며, 체육(體育)에 있어서의 체위(體位)의 향상과 체력의 증진도 만물주관에 긴요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기술교육(技術敎育)이나 체육에도 다시 세분된 전문분야가 있다. 그리고 예술에 관한 교육, 즉 예능교육(藝能敎育)도 일종의 기술교육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주관교육은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한 수단 배우는 것이다. 창조성은 천부적(天賦的)인 것으로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천적(先天的)인 가능성으로서 구비하고 있지만 이것을 현실적으로 발휘(發揮)하기 위해서는 주관교육이 필요하다.

2) 창조성(創造性)의 개발과 2단구조(構造)의 형성

창조성의 개발이란, 요컨대 하나님의 창조의 2단구조(構造)를 본받아 내적 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의 능력을 증진시키고 외적 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의 숙련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내적 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의 능력이란 로고스의 형성 능력, 즉 구상(構想)의 능력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교육(知識敎育)을 통하여 지식을 많이 획득(獲得)하여 내적 형상(觀念, 槪念) 등)의 내용을 질적, 양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얻은 지식(情報)이 많을수록 구상이 풍부(豊富)해진다. 로고스를 형성·구상(構想)한다는 것은 소위 아이디어의 개발을 뜻하며, 산업(産業)에 있어서의 기술혁신(innovation)도 부단(不斷)한 로고스 형성 · 구상(構想)의 반복(反復)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다음에 외적 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의 능력을 양성한다는 것은 일정한 구상에 따라 도구나 재료를 사용하여 구상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 즉 외적 수수작용(授受作用, 手技)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교육이 필요하다. 또 신체적 조건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체육에 의한 체력의 증진도 필요하다.

3) 보편교육(普遍敎育)을 기반으로 한 주관교육(主管敎育)

주관교육은 심정교육 및 규범교육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들과 병행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교육(知識敎育)이나 기술교육이나 체육은 심정(心情, 사랑)과 규범에 근거해야 비로소 건전한 것이 되고 창조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은 전인류가 모두 공통적으로 받아야 할 교육이므로 보편교육(普遍敎育)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주관교육은 개인(個人)의 자질에 따라 배우는 영역으로서 어떤 사람은 자연과학(自然科學), 어떤 사람은 文學, 또 어떤 사람은 경제학을 전공하는 등 원칙적으로 개별교육(個別敎育)이 된다.

여기에서 보편교육(普遍敎育)과 개별교육(個別敎育)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은 정신적 교육, 즉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며, 주관교육은 만물을 주관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교육(普遍敎育, 심정교육(心情敎育), 규범교육(規範敎育))과 개별교육(個別敎育, 주관교육(主管敎育))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병행하여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균형교육(均衡敎育; balanced education)이다(그림 5-2).

그리스시대나 중세(中世), 근세(近世)에도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랑의 교육이 있었고, 윤리(倫理) 도덕(道德)교육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것들이 거의 무시(無視)되기에 이르렀으며, 교육은 거의 전부가 지식편중(知識偏重), 기술편중(技術偏重)의 소위 불균형교육(不均衡敎育)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인간성의 건전한 성장이 지장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여기에 새로운 교육론이 나타나서 새로운 차원에서 참된 사랑의 교육 특히 윤리 도덕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지식교육(知識敎育)과 기술교육(技術敎育)이 행해져야 하며 이러한 균형교육(均衡敎育)이 시행될 때 비로소 과학기술(科學技術)이 보다 선한 방향으로 지향(指向)해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해문제(公害問題)나 자연의 파괴 등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어 갈 것이며 교사들도 이와 같은 교육을 통하여 교사로서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부언(附言)하거니와 교육의 원점(原點)은 가정교육(家庭敎育)에 있다. 가정교육이 연장, 확대, 발전한 것이 학교교육이다. 따라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교육으로서의 심정교육(心情敎育)과 규범교육(規範敎育)이 제대로 시행(施行)되기 어렵게 되며, 따라서 교육의 통일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