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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基督敎) 가치관(價値觀)의 취약성(脆弱性)

기독교에는 다음과 같은 성구(聖句)를 통하여 훌륭한 덕목(德目)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9),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44),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산상수훈, 마태 5장).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慈悲)와 선량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 5:22~23).

그런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고 되어있는 바와 같이 덕목(德目)의 기초가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요한 4:7~8)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사랑의 기초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근대(近代)에 이르러 니체, 포이엘바하, 마르크스, 러셀, 사르트르 등에 의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否定)되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러한 사상에 대해서 기독교는 효과적으로 대처(對處)할 수 없었다. 즉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의 이론적 대결에 있어서 기독교는 패배(敗北)만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무신론의 포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또 기독교 가치관(價値觀)에 대한 공산주의의 의도적인 도전이 있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가 말하는 절대적 사랑이나 인류애(人類愛)를 부정하고, 진정한 사랑은 계급애(階級愛) 또는 동지애(同志愛)라고 주장한다.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사회속에서 계급을 넘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프롤레타리아트 측에 서거나 부르주아 측에 서거나 양자택일(擇一)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애를 부르짖는 것은 말뿐이며, 실제로는 인류애(人類愛)를 실천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계급사회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을 얼른 들으면 확실히 계급애가 현실적이고, 기독교의 사랑은 관념적(觀念的)인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사랑의 원천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종래와 같은 기독교의 신관(神觀, 사랑觀)에 설득력이 있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최근에 이르러 제3세계(第三世界)에 해방신학(解放神學)과 종속이론(從屬이론)이 대두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해방신학에 의하면, 예수는 그 시대의 억압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고, 혁명가였다는 것이며, 따라서 참다운 기독교인은 사회혁명을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독인의 가난한 사람에의 동정은 공산주의의 계급애(階級愛)와 부합하는 것이니, 현실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공산주의와 제휴(提携)할 필요조차 있다고 하는 주장까지 있었다.

종속이론(從屬理論)도 제3세계(第三世界)의 빈곤은 선진제국(先進諸國)과 제3세계(第三世界)와의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제3세계(第三世界)가 빈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제3세계(第三世界)는 선진제국(先進諸國) 즉 자본주의 제국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종속이론도 공산주의와의 제휴를 도모했다. 해방신학(解放神學)이나 종속이론(從屬理論)은 공산주의와 같은 확고한 철학, 역사관, 경제이론이 없으므로 결국은 공산주의에 휩쓸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강구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