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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니 체

1) 니체의 인간관(人間觀)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신(神)앞에 설 때 본래的자기(自己)가 된다고 하였으나 니체(Nietsche, Friedrich Wilhelm, 1844~1900)는 그와 반대로 신(神)에 대한 신앙에서 해방될 때, 인간은 비로소 본래적 자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니체는 당시 유럽사회에서의 인간의 수평화(水平化), 왜소화(矮小化)를 개탄(慨歎)하고, 그 원인이 기독교의 인간관에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는 生(生命)을 부정하고 금욕주의(禁慾主義)를 주장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피안(彼岸)에 두었다. 또 만인은 신(神)앞에 평등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인간의 활발한 생명력(生命力)을 소실(消失)시키고 강(强)한 인간을 끌어내리어 인간을 평균화하였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신(神)은 죽었다(Gott ist tot)라고 선언(宣言)하면서 기독교를 공격(攻擊)했다. 기독교의 도덕은 신(神)이나 영혼(靈魂)이라는 개념으로 生과 육체를 억압하고, 生의 현실을 부정적(否定的)으로 봄으로써 강한 인간에의 길을 막았으며, 약자(弱者)나 고생하는 자를 후원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기독교의 도덕을 그는 노예도덕(奴隷道德))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사랑의 생활, 정신적(精神的)인 생활을 물리치고 본능에 의한 생활, 생명이 욕구하는 대로의 생활을 전면적으로 긍정(肯定)하였다.

생명(生命)이란 성장(成長)하려고 하는 힘이며, 발전하려는 힘이다. 그는 대체로 살아 있는 자를 발견하는 곳에서 나는 권력에의 의지도 발견하였다. 그리고 복종(服從)하며 봉사하는 자의 의지 속에서도 나는 주인이 되려고 하는 의지를 발견하였다"10)라고 하였으며,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저(根底)에는 보다 강대해지고자 하는 권력(權力)에의 의지(意志)(Wille zur Macht)가 존재(存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노예도덕(奴隷道德)을 대신하여 권력의 크기를 가치기준으로 하는 군주도덕(英雄道德)을 수립했다. 그는 선(善)과 악(惡)의 기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善)이란 무엇인가?-권력(權力)의 감정을, 권력에의 의지(意志)를, 권력자체를 인간에게 높이는 모든 것이다. 악(惡)이란 무엇인가?-나약으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것이다. 행복(幸福)이란 무엇인가?-권력이 성장한다는 것, 저항(抵抗)을 이겨낸다는 것의 감정(感情), 약자(弱者)나 잘못된 것 등은 철저(徹底)하게 몰락(沒落)해야 한다. 이것이 즉 우리들의 인간愛의 제일명제(第一命題)이다. 그리고 그들의 철저한 몰락(沒落)을 도와 주어야 한다. 어떠한 배덕(背德, 배은망덕)보다도 유해(有害)한 것은 무엇인가? 모든 잘못된 것과 모든 약자에 대하여 아주 불쌍히 여기는 것, 이것이 기독교이다.

그의 군주도덕(君主道德)에 의한 이상적 인간상(像)은초인(超人)(Ubermensch)이다. 초인이란 인간의 가능성을 극한(極限)에까지 실현한 존재로서 권력의지(權力意志)의 체현자(體現者)이다. 초인의 가능성은 모든 生의 고통을 견디고 生을 절대적으로 긍정(肯定)하는데 있다. 生을 절대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있다"라는 영겁회귀(永劫回歸)의 사상, 즉 세계는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이 영원히 반복(反復)한다는 사상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운명(運命)도 이를 인내(忍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必然的)인 것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 운명(運命)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하면서 운명애(運命愛)(amor fati)를 주장하였다.

2) 통일사상에서 본 니체의 인간관(人間觀)

기독교의 극단적(極端的)인 내세주의(來世主義)에 의하여, 인간은 현실의 생활을 존중(尊重)할 수가 없게 되어서 약체화(弱體化)하였다고 니체는 생각하였으나, 인간의 본성(本性)을 회복(回復)하려고 고뇌(苦惱)한 그의 진격(眞擊)한 노력은 그 나름대로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니체의 주장은 기독교에 대한 하나의 참소요, 경고였다. 즉 기독교가 그 본래의 정신(精神)에서 이탈(離脫)하고 있다고 니체는 생각하였다. 니체가 본 기독교의 하나님은 높은 곳에 앉아서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는 사후(死後)의 부활(復活)을 약속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벌(罰)을 준다는 심판의 신(神)이고, 피안(彼岸)的인 신(神)이었다. 그러나 니체가 비난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니고 예수의 가르침을 피안주의(彼岸主義)로 변화시킨 바울이었다.

통일사상에서 보면, 하나님은 현세(現世)를 부정하고 높은 곳에만 계시는 피안적인 신(神)만은 아니다. 신(神)의 창조목적은 사후(死後)의 세계에 있어서의 천국이 아니라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실현이었다. 그리고 지상에 천국이 실현되었을 때,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체험한 사람들이 사후(死後)에 천상천국(天上天國)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명(使命)도 본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실현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울이 피안주의(彼岸主義)로 변질시켰다고 하는 니체의 주장에는 일리(一理)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태민족(猶太民族)의 불(不)신앙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구원(救援)은 영적(靈的)인 구원이 되었고 현세에 있어서의 인간은 항상 악(惡)의 주체인 사탄의 침입(侵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을 비난(非難)한 나머지 기독교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신(神)의 죽음까지 선언(宣言)한 것은 잘못이었다.

다음은 모든 생명을 지닌 존재에는 권력의지(權力意志)가 있다는 니체의 주장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라하는 축복(祝福)을 주셨다. 즉 신은 인간에게 주관성(主管性)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지배욕(주관욕) 그 자체는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본성의 하나이다. 이 지배(주관)의 위치는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간의 본성의 하나인 주체격위(主體格位)에 해당한다. 그런데 주체격위의 항목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본래의 주관(主管)은 사랑에 의한 주관이지 힘에 의한 주관은 아닌 것이다. 즉 주관성을 발휘(發揮)하는 전제조건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하여 인격(人格)을 완성하고 가정생활에 있어서 사랑의 윤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기대위에서 참다운 주관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그와 같은 기반을 무시(無視)하고 단지 권력의지(權力意志)만을 전면(前面)에 내세웠으니 거기에 니체의 또 하나의 잘못이 있다 하겠다.

니체는 기독교의 도덕(道德)이 강자(强者)를 부정하는 약자(弱者)의 도덕이라고 하였으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이 참다운 주관성을 발휘(發揮)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교가 참사랑을 가르쳤으며, 또 가르쳐야만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육신의 본능적 욕망을 통하여 작용하는 악(惡)의 힘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육신의 본능적(本能的) 욕망(欲望) 그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타락인간은 육신을 주관해야 할 영인체(靈人體)의 심령기준이 미완성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이 육신의 본능적 욕망에 따라 살면 악(사탄)의 힘에 지배(支配)되고 만다. 영인체의 심령기준이 높아져서 육신을 주관하게 될 때, 즉 생심(生心)이 육심(肉心)을 주관하게 될 때 비로소 육신의 움직임은 선(善)하게 된다.

그런데 니체는 정신(精神), 사랑, 이성을 무시하고 육체(肉體), 본능(本能), 생명(生命)을 중시(重視)하라고 외쳤다. 이것은 인간의 영인체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인간에게서 영인체를 무시할 경우 무엇이 남을 것인가. 동물적인 육신만이 남는다. 즉 니체는 인간을 동물의 격위에까지 격하(格下)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해서 강대해지라고 하는 것은 맹수가 되라고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신(神)이 창조하려고 한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을 본래의 모습으로 인도(引導)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지만 그 방법이 전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의 통일체로서 성상이 주체요 형상이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니체는 인간의 형상적인 면만을 중시(重視)하고 성상적인 면을 무시(無視)했던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기독교人들이, 예수님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실현코자 오셨던 사실을 망각하고 지상의 생활을 자칫 경시(輕視)하려는 경향에 대해서 경고를 발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