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까지의 질서(秩序)와 평등(平等)
근대(近代) 이후 민주주의는 중세(中世) 이래의 신분제도와 그 제도에 수반된 여러 특권들을 폐지(廢止)하고, 법(法) 앞에서의 평등과 정치참여에 있어서의 평등(平等), 즉 보통선거 제도를 실현했다. 그러나 법 앞에서의 평등은 실현되었지만 경제적인 평등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계층간의 빈부(빈부(貧富))의 차(差)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이 빈부(貧富)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법(法) 앞에 평등이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명목상(名目上)의 평등일 뿐, 실질적인 평등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사유재산(私有財産)의 폐지와 무계급사회인 공산주의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러시아혁명(革命) 후 70여년간 공산주의를 실시해 본 결과는 새로운 특권계급(特權階級)의 출현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빈부(貧富)의 격차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역사개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등을 희구해 왔지만 아직도 참다운 평등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질서와 평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모든 인간이 권리에 있어서 완전히 평등하다면, 통치자(統治者)와 피통치자(被統治者)라는 권리의 차를 인정하지 않게 되어, 사회는 무정부의 무질서 상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또 한편 질서를 중시(重視)하면 평등이 손상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본심(本心)이 희구하는 참다운 평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질서와 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여기서의 평등은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권리평등(權利平等)을 뜻한다. 이 권리평등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의 하나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의미의 평등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질서의 개념과 상반관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즉 평등을 강조하다 보면 질서가 무시되기 쉽고, 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다 보면 평등이 무시되기 쉽다. 이것이 오늘까지의 질서(秩序)와 평등(平等)에 관한 일반적 견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