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방법(方法)에서 본 인식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식의 기원(起源)을 경험으로 본 경험론은 나중에 회의론(懷疑論)에 빠지게 되었고, 인식의 기원을 이성에 있다고 본 이성론은 나중에 독단론(獨斷論)에 빠졌다. 그와 같은 결과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되어지는가, 그리고 이성에 의해서 어떻게 인식이 성립되는가 하는 문제, 즉 인식의 방법을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의 방법을 중시(重視)하고 이것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과 헤겔?마르크스의 변증법적방법이다. 여기서는 칸트와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해서 그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
영국의 경험론은 회의론(懷疑論)에, 대륙의 합리론(合理論)은 독단론에 빠졌지만 이 두 가지 입장을 종합하여 새로운 견해를 세운 사람이 칸트(I. Kant, 1724~1804)이다. 경험론은 인식의 기원(起源)을 경험으로 보고 이성의 작용을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이성론은 이성을 만능의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양자가 모두 오류에 빠졌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칸트는 올바른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식이 될 수 있는가 하는데 대한 분석(分析)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작용의 검토, 즉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의 세가지 비판서를 저술하였는데, 각각 진리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선(善)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미(美)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라는 진(眞)-선(善)-미(美)의 가치의 실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중 인식론에 관한 것을 다룬 부분이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이다.
1)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의 요점
칸트는, 지식(知識)은 경험을 통하여 증대한다는 사실(事實)과, 올바른 지식은 보편타당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경험론과 이성론을 통일하려고 하였다. 경험에 의해서 비로소 인식능력이 작용하는 것은 자명(自明)하지만, 여기에서 칸트가 찾아낸 것은 인식하는 주관속에 선천적(先天的)인 인식의 형식(관념(觀念))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즉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感性的)내용(감각적질료, 감각의 다양, 감각적소재라고도 한다)이 주관의 선천적형식(先天的形式)에 의해서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인식의 대상(경험의 대상)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종래의 경험론이나 이성론이 모두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한다고 한 데 대하여, 칸트는 인식의 대상이 주관에 의해 구성(構成)된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이러한 착상을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라고 자찬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은 이와 같이 대상 그 자체의 인식을 목표로 삼지 않고 객관적 진리성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가를 명백히 하고자 한 것으로서, 이것을 선험적(先驗的; 또는 초월적, transzendental)방법(方法)이라고 불렀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認識)은 판단이다. 판단은 명제(命題)인 것으로서 거기에는 주어와 술어가 있다. 따라서 인식을 통하여 지식이 증가한다는 것은, 판단(命題)에 있어서 주어의 개념 속에 없던 새로운 개념(槪念)이 술어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칸트는 그와 같은 판단을 종합판단(綜合判斷)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어의 개념 속에 술어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판단을 분석판단(分析判斷)이라고 한다. 결국, 종합판단에 의해서만 새로운 지식(知識)이 얻어지는 것이다.
칸트가 들고 있는 분석판단(分析判斷)과 종합판단(綜合判斷)의 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물체(物體)는 연장을 가지고 있다라는 판단은 물체의 개념 속에 이미 연장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석판단(分析判斷)이다. 한편 직선(直線)은 두점간(二點間)의 최단의 선(線)이다라는 판단은 종합판단(綜合判斷)이다. 직선이라는 개념은 장단(長短)이라는 양(量)을 포함하지 않고 단지 똑바르다는 성질을 가리키고 있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최단이라는 개념은 전혀 새로이 첨가(添加)된 것이다.
그러나 종합판단(綜合判斷)에 의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 지식이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올바른 지식이 될 수 없다. 지식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인식(經驗的認識)이어서는 안되며, 경험에서 독립된 先天的(아프리오리)인 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종합판단(綜合判斷)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은 선천적(先天的)인 인식 즉 선천적 종합판단(先天的 綜合判斷)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칸트가 부딪혔던 문제는선천적(先天的)인 종합판단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9)하는 것이었다.
2) 내용과 형식(形式)
칸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써 경험론과 이성론을 종합하려고 하였다. 내용이란, 외계의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우리의 감성(感性)에 주어지는 표상(表象) 즉 의식 내용을 말한다. 내용은 인식의 소재(Stoff) 또는 질료(質料; Materie)로서 외래적인 것이므로 후천적(後天的), 경험적(經驗的)인 요소이다.
한편 형식(形式)이란 질료(質料) 즉 다양한 감각의 내용을 종합 통일하는 한정성(限定性)이며 테두리이다. 즉 감각적 단계에서 형성된 각종의 질료를 통일하는 뼈대이다. 이 형식이야말로 선천적인 것이며, 그 감성적 내용에 통일성을 주는 테두리이다. 이 선천적(先天的)인 형식(形式)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각의 다양(多樣)한 내용을, 직감적으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限定)하는 테두리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이며, 또 하나는 오성(悟性)의 사유(思惟)를 한정(限定)하는 사유형식(思惟形式)이다. 이러한 후천적(先天的)인 형식(形式)에 의해서 보편타당성을 지닌 종합판단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시간적(時間的), 공간적(空間的) 개념으로서의 직관형식(直觀形式)은 감성적 단계에서 감각의 다양한 내용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직감적(直感的)인 틀(形式)이다. 그러나 감성적(感性的) 단계에서의 직감만으로는 인식이 성립(成立)되지 않는다. 인식이 성립(成立)되려면 대상이 오성(悟性)에 의해 사유(思惟)되는 과정이 필요하며, 따라서 오성단계에 있어서의 사유(思惟)를 한정하는 테두리로서의 선천적인 형식(形式), 즉 선천적인 개념으로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직관형식(直觀形式)으로 포착한 내용과 사유형식(개념)의 결합에 의해 인식이 성립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칸트는 내용 없는 사유(思惟)는 공허하며, 개 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는 오성(悟性)에 있어서의 선천적인 개념(思惟形式)을 순수오성개념(reiner Verstandesbegriff) 또는 카테고리(Kategorie, 범주(範疇))로 불렀다. 그리고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일반논리학에 있어서의 판단(判斷)의 형식(悟性形式)을 정리해서 다음과 같은 12가지 카테고리를 도출(導出)하였다.
1.분량(分量; Quantitat)... ... ... 단일성(單一性; Einheit) 다수성(數多性; Vielheit) 총체성(總體性; Allheit)
2.성질(性質)(Qualitat)... ... ... 실재성(實在性; Realitat) 부정성(否定性; Negation) 제한성(制限性; Limitation)
3.관계(關係)(Relation)... ... ... 실체성(實體性; Substanz) 인과성(因果性; Kausalitat) 상호성(相互性; Gemeinschaft)
4.양상(樣相; Modalitat)... ... ... 가능성(可能性)(Moglichieit) 현실성(現實性; Wirklichkeit) 필연성(必然性; Notwerdigkeit)
이와 같이 칸트는 대상의 감성적 내용(感性的內容)이 직관형식을 통하여 직감되고 사유형식(思惟形式)(카테고리)을 통하여 사유됨으로써 인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감각적 단계에 있어서의 감성적(感性的)내용(직관적 내용)과 오성적 단계에 있어서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은 자동적으로 종합되는 것이 아니다. 감성과 오성은 같은 인식능력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인 것이다. 여기에 兩요소(要素)를 공유하는 제3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구상력(構想力; 想像力, Einbildungskraft)이며, 이 구상력에 의해서 직관적(直觀的) 내용과 사유형식(思惟形式)이 통일되어서 다양한 질료의 단편(端片)들이 종합-통일되게 된다. 이와 같이 감각적(感覺的)단계의 직관적(直觀的)내용과 오성적(悟性的)단계의 사유형식(思惟形式)이 구상력에 의해 종합-통일되어 생긴 구성물(構成物)이 바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認識)의 대상(對象)이다. 따라서 칸트에 있어서의 인식의 대상은 객관적으로 외계(外界; 외부세계)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과정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인식의 대상은 경험론의 후천적인 요소와 이성론의 선천적인 요소가 하나로 통일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때 인식하는 우리들의 의식(意識)은 경험적, 단편적인 의식이어서는 안 되며, 경험적인 의식의 근저(根底)에 통일력을 지닌 순수의식(純粹意識)이어야 한다. 칸트는 그것을 의식일반(意識一般; Bewusstsein Uberhaupt), 순수통각(純粹統覺; reine Apperzeption) 또는 선험적통각(先驗的統覺; transzend entale Apperz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감성(感性)과 오성(悟性)의 작용이 어떻게 결부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칸트는 구상(構想)力이 그 매개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3) 형이상학(形而上學)의 부정과 물자체(物自體)
이리하여 현상세계에 있어서의 인식, 즉 자연과학이나 수학에 있어서, 어떻게 해서 확실한 인식이 성립(成立)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논한 후에, 칸트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지 아니한가를 검토하였다. 감각적(感覺的)인 내용이 없는 형이상학은 감성적직관(感性的直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인식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작용(作用)은 悟性만에 관한 것이어서 감성과는 직접 관계하지 않으므로, 현실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마치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착각(錯覺)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같은 착각을 칸트는 선험적가상(先驗的假象; transzendentaler Schein)이라고 불렀다. 선험적가상(先驗的假象)에는 영혼(靈魂)의 이념(理念), 우주(세계)의 이념(理念), 그리고 신(神)의 이념(理念)의 세 가지가 있다.
그 중 우주의 이념 즉 우주적가상(宇宙的假象)을 순수이성의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ie)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성이 무제약자(無制約者; 무한한 우주)를 추구할 때, 동일한 논거에서 두 개의 전혀 相反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있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다(定立), 세계는 시간적으로 시작이 없고, 공간적으로 한계가 없다(反定立)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명제(命題)가 그 예이다. 이것은 감성(感性)에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세계 전체로서 파악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고 하였다.
칸트는 대상에서 오는 감성적(感性的)내용이 주관의 선천적인 형식에 의해서 구성되는 한에 있어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며, 대상 그 자체, 즉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고 하였다. 물자체의 세계란 현상적(現象的) 세계의 배후에 있다고 보는 세계이며, 예지계(叡智界)라고도 한다. 그러나 칸트가 물자체의 세계를 부정(否定)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에서 그것은 도덕을 실현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세계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지계(叡智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유와 영혼의 불사(不死)와 신(神)의 존재가 요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2) 마르크스주의(主義)의 인식론(認識論)
다음은 유물변증법에 근거한 인식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유물변증법에 의한 인식론은 마르크스主義 인식론 또는 변증법적유물론의 인식론이라고 불려진다.
1) 반영론(反映論, 模寫說)
유물변증법에 의하면, 정신의식(精神意識)은 뇌의 산물 또는 기능이다. 그리고 객관적 실재가 의식에 반영됨(模寫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 진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반영론 또는 모사설(teoriya otrazhenia, copy theory)이라고 한다. 그것을 엥겔스는 우리들은……… 다시 유물론적으로, 우리들의 두뇌(頭腦) 속의 개념을 현실의 사물의 모사라고 이해하였다'고 말하고, 레닌은 인간의 의식은(인간의 의식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 거기에서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고, 또 발전하고 있는 외계(外界)를 반영한다'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에 있어서는 칸트가 말하고 있는 감성적내용이 그대로 객관적실재의, 의식에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사유형식(思惟形式)도 객관세계의 실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2) 감성적인식(感性的認識), 이성적인식(理性的認識), 실천(實踐)
인식은 단순히 객관적세계의 반영이 아니다. 반영된 내용은 반드시 실천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은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생생한 직관(直觀)으로부터 추상적사고(抽象的思考)로, 그리고 이것에서 실천으로…… 이것이 진리인식의, 즉 객관적실재의 인식에 대한 변증법적인 과정이다'.
유물변증법적 인식의 과정을 더욱 구체적(具體的)으로 설명한 것이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뚱)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식은 실천을 터로 하고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인식의 발전과정에 관한 변증법적유물론의 이론이다……… 즉 인식은 낮은 단계에서는 감성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며, 높은 단계에서는 논리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어느 단계거나 모두 하나의 통일적인 인식과정의 단계이다. 감성(感性)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성질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기초 위에서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
인식과정의 제1보(第一步)는 외계의 사물에 접촉하기 시작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감각(感覺)의 단계이다 [감성적인식의 단계]. 제2보(第二步)는 감각된 재료를 종합하여 정리하고 개조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개념(槪念), 판단(判斷) 및 추리(推理)의 단계이다 [이성적(理性的) 인식(認識)의 단계].
이와 같이 인식은 감성적인식에서 이성적인식(또는 논리적인식)으로, 그리고 이성적인식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식과 실천은 일회만(一回限)의 것이 아니다. 실천, 인식, 재실천(再實踐), 재인식(再認識)이라는 형식이 순환왕복(循環往復)하여 무한히 반복되며, 그리고 각 순환마다 실천과 인식의 내용이 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칸트는 주관(主觀)이 대상을 구성하는 한에 있어서만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물자체(物自體)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써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는 현상(現象)을 통해서만 사물의 본질이 인식되어지며, 실천에 의하여 사물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상에서 유리(遊離)된 물자체(物自體)의 존재는 부정했다. 엥겔스는 칸트에게 반론(反論)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칸트의 시대에는 자연의 물체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이 극히 단편적이었으므로, 칸트도 그 자연물에 대해서 우리들의 얼마 안되는 지식의 배후에 무엇인가 아직 신비한 물자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놀라운 진보(進步)에 의해서 이러한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차례차례로 파악되고 분석되었다. 그뿐 아니라 재생산(再生産; reproduce)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적어도 우리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식과 실천의 과정에 있어서 실천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모택동은 변증법적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제일의 지위에 놓으며, 인간의 인식은 조금도 실천으로부터 떠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실천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작용이나 인간의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말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혁명을 최고의 실천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식의 최종적인 목적은 혁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식의 능동적 작용은,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으로의 능동적인 비약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더욱 이성적 인식으로부터 혁명적 실천으로 라는 비약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 인식(理性的認識)에 있어서의 사유형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논리적인식은 개념을 매개로 하는 판단, 추리 등의 사유활동을 말하지만, 그 때 사유형식은 중요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반영론(反映論)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는 사유형식이 객관세계에 있어서의 제과정의 의식에의 반영, 즉 존재형식의 의식에의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카테고리(實在形式)?사유형식(思惟形式)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물질(物質) | 한도(限度) |
|---|---|
| 운동(運動) | 모순(矛盾) |
| 공간(空間) | 개별(個別)과 보편(普遍) |
| 시간(時間) | 원인(原因)과 결과(結果) |
| 의식(意識) | 필연성(必然性)과 우연성(偶然性) |
| 유한(有限)과 무한(無限) | 가능성(可能性)과 현실성(現實性) |
| 양(量) | 내용과 형식(形式) |
| 질(質) | 본질(本質)과 현상(現象) |
3)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와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
인식과 실천의 반복에 의해서 지식이 발전해 가는데, 지식의 발전이란 지식의 내용이 풍부(豊富_해지는 것과 지식의 정확도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 지식(知識, 眞理)의 상대성과 절대성이 문제가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실재(客觀的實在)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 진리라고 한다. 즉 우리들의 감각, 지각, 표상, 개념, 이론이 객관세계와 일치하며, 그것을 올바르게 반영한다면 그것들은 참[眞]이다 라고 한다. 또 참된 언명(言明), 판단(判斷) 또는 이론을 진리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마르크스주의는 실천-결국은 혁명적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식이 참인가 아닌가는 실천을 통하여 현실과 비교하며, 인식이 현실에 일치하고 있는가 있지 않은가를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실천속에서 인간은 그 사고의 진리를, 다시 말하면 그 사고의 현실성과 힘(力), 차안성(此岸性)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사람들의 사회적 실천만이 외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진리인가 아닌가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결국 혁명적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시대의 지식은 부분적(部分的)이고 불완전해서 상대적진리에 머물지만,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지식은 완전한 절대적진리에 한없이 가까워진다고 하면서 절대적진리의 존재를 승인한다. 그러므로 상대적진리(相對的眞理)와 절대적진리(絶對的眞理)의 사이에 넘기 어려운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레닌은 말했다. 그리고 상대적인 진리속에 절대적으로 참다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이 부단히 축적(蓄積)되었을때 절대적진리가 된다'고 하였다.
以上으로종래의 인식론의 항목을 전부 마친다.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상(以上)은 종래의 인식론의 요점을 참고로 소개했을 뿐이며, 따라서 통일인식론의 이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部分)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