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의 성장과정(成長過程)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나, 태어나면서 곧바로 하나님을 닮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일정한 성장기간이 없어서는 안 된다. 피조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소생(蘇生), 장성(長成), 완성(完成)의 3단계에 걸쳐 성장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닮게 된다. 닮되 완전성(完全性), 번식성(繁殖性), 주관성(主管性)을 닮게 된다. 따라서 성장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으로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측면과 하나님의 양음(陽陰)의 조화의 측면,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을 닮아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3대축복(三大祝福)이란, 인간이 완성한 후, 하나님의 완전성, 번식성, 주관성을 상속받는다는 의미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3대축복은 3대예약축복(三大豫約祝福)이다. 그런데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이 3대축복은 성취되지 않았다.
이 3대축복은 창세기에 있는 대로, 하라는 따위의 명령형식(命令形式)의 축복이다. 비록 인간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명령(命令)은 취소된 것이 아니며, 명령(命令, 축복) 그 자체는 오늘날까지 유효(有效)하다. 이것은 천의(天意)가 인간의 잠재의식(潛在意識)을 통하여 3대명령(命令), 즉 3대축복을 성취하도록 작용해 온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무의식중에도 3대축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즉 타락사회에 있으면서도 인간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그와 같은 천의(天意)에 따라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인격적(人格的)으로 성장하여, 좋은 상대를 찾아서 가정을 만들고 자연을 지배하거나 사회를 개선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이다.
인간에게 성장욕(成長欲), 결혼욕(結婚欲), 지배욕(支配欲), 개선욕(改善欲) 등이 있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욕망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달성되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인간시조의 타락 때문이었다.
여하 간에 본연(本然)의 세계에 있어서, 인간은 3대축복을 완성하기 위하여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이외의 만물도 성장한다. 그런데 만물은 원리자체(原理自體)의 자율성과 주관성에 의해 성장한다. 즉 생명(生命)이 지향하는 대로 맡겨두면 자연히 성장하는 것이다.
원리자체의 자율성(自律性), 주관성(主管性)이란 바로 생명(生命)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육신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원리자체의 자율성(自律性)과 주관성(主管性)에 의해 성장하지만, 영인체의 성장은 그렇지 않다. 영인체는 책임분담을 완수할 때에만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인간에게 책임분담(責任分擔)이 부과된 것은 그 때문이다. 책임분담(責任分擔)에 의한 성장이란 인간이 자신의 책임과 노력에 의해 인격을 향상(向上)시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의사로써 규범원리(規範原理)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체험)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류시조(人類始祖)인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계명(戒命)을 지키면서 성장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한 다음, 부부가 되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전인류를 대표하는 최초의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자기의 책임분담 뿐만 아니라 후손(後孫)의 대부분의 책임분담까지도 메워져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干涉)하시지 않는다.
아담과 해와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와 같은 무거운 책임분담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완수하게 되면, 그 자손들은 지극히 적은 분량(分量)의 책임분담만으로도, 즉 부모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완성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경우, 이 3대축복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순전히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완성한 뒤, 자녀들이 그 부모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른다는 말은 부모의 가르침 즉 부모의 교육을 자식들이 받아야 함을 뜻한다.
여기에 부모(父母)의 자녀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생긴다. 바꾸어 말하면 자녀(子女)가 해야 할 책임분담을 위해서 부모의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에 교육의 이념(理念)이 세워진다. 즉 부모가 자녀들을 가르쳐서 3대축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본래의 장소는 부모가 상주(常住)하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정보량이나, 교육내용이 증대(增大)하게 되어 현실적으로 부모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교육의 장소는 필연적(必然的)으로 가정에서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로 옮겨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대신 학교에서 스승이 부모를 대신하여 교육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부모의 심정(心情)으로 부모를 대신해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본래의 교육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