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시대의 가치관
1) 유물론적(唯物論的) 가치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식민지(植民地)였던 이오니아지방에 유물론적(唯物論的)인 자연철학이 출현(出現)했다. 그 당시 그리스는 씨족사회로서 신화를 중심한 시대였으나,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은 자연현상에 대한 신화적인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와 인생을 자연법칙을 통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이오니아지방에는 밀레토스라는 도시가 있었으며, 그곳은 무역이 왕성하여 상인들은 지중해의 전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적이고 행동적이었다.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신화적(神話的)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무역도시 밀레토스에 기원전 6세기(世紀)경부터 유물론적(唯物論的)인 철학자들이 출현(出現)하였다. 이들을 밀레토스학파(學派)라 하며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이 그 대표자였다. 이들은 주로 만물의 근원(根源; arche)에 대해서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만물(萬物, 자연)의 근원(根源)에 관하여 탈레스(Thales, 624~546 B. C.)는 그것을 물(水)이라고 설명하였고,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611~547 B. C.)는 무한자(無限者, apeiron),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5~528 B. C.)는 공기(空氣)라고 하였으며, 그 외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35~475 B. C.)는 불(火)이라고 하였고,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460~370 B. C.)는 원자(原子)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연철학(유물론)과 더불어 객관적(客觀的), 합리적(合理的)인 사고방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2) 자의적가치관(恣意的價値觀, 궤변적가치관(詭辯的價値觀)
기원전(紀元前) 5세기경, 그리스에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여 민주정치가 발달하였다. 청년들은 입신출세(立身出世)을 위하여 지식을 배우려 하였고, 그 때문에 특히 변론술(辯論術)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변론술을 가르쳐서 일정한 보수를 받는 학자들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소피스트라고 불렀다.
그때까지 그리스철학은 자연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으나, 자연철학만으로는 인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인간사회의 여러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자연법칙은 객관성(客觀性)을 가지고 있는데 비하여 인간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법(法)이나 도덕(道德)은 나라에 따라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법(法)이나 도덕에는 어떤 객관성(客觀性)이나 보편성(보편성(普遍性))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사람들은 주로 상대주의(相對主義) 혹은 회의주의적(懷疑主義的)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예컨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1~411 B. C.)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尺度)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진리의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며, 따라서 이것은,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상대주의를 표시하는 말이다.
소피스트들의 활동은 처음에는 민중(民衆)을 각성시키는 일종의 계몽적(啓蒙的)인 효과를 주었다. 그러나 점차로 회의론(懷疑論)의 입장을 취해가면서 진리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변론(辯論)의 방법만을 중시하고, 궤변을 해서라도 논쟁에 이기려고만 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궤변가(詭辯家)라고도 불려지게 되었다.
3) 절대적(絶對的) 가치관
① 소크라테스
이러한 상황하에 소크라테스(Socrates, 470~339 B. C.)가 나타나서 이같은 현상을 크게 개탄하였다. 그는 소피스트는 아는 척하나 실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먼저 자기가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지적하면서 인간은 먼저 자신이 무지함을 아는 것이 참다운 知에 이르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도덕의 근거는 인간의 내면에 내재(內在)하는 신(神)(다이모니온)에서 구했으며 따라서 도덕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덕(德)이란, 진실하게 살기 위한 知의 애구(愛求)를 의미하며 德이 知이다라는 것이 그의 핵심사상이었다. 또 그는 덕(德)을 안다면 반드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참다운 지(知)를 얻을 수 있을까. 참다운 知는 타인(他人)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또 자기자신에 의해서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다. 타인과의 대화(문답)를 통해서만 자기와 타인이 함께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진리(普遍的眞理, 참다운 知)에 도달할 수 있다고 스크라테스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덕(德)을 확립함으로써 아테네를 사회적 혼란에서 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② 플라톤
플라톤(Platon, 427~347 B. C.)은 변화(變化)하는 현상계(現象界, 感覺界)의 배후에 변치 않는 본질의 세계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이데아계(叡知界)라고 불렀다. 그런데 인간은 혼(魂)이 육체에 갇혀 있기 때문에 보통 감각계(感覺界)를 참된 실재(實在)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본래 인간의 혼이 육체에 깃들기 전에는 이데아界에 있었으나 육체에 깃들게 되면서 이데아界를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의 혼(魂)은 항상 참된 실재인 이데아界를 동경(憧憬)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이데아의 인식(認識)이란 흔히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想起)하는 일에 불과(不過)하다. 윤리적(倫理的)인 이데아에는 정의(正義)의 이데아, 美의 이데아, 선(善)의 이데아가 있으나 그중에서 선(善)의 이데아가 최고의 이데아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가져야 할 덕(德)으로서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네 가지 덕(德)을 들었다. 특히, 국가를 통치하는 자는 지혜의 덕(德)을 가진 철학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바로 선(善)의 이데아를 인식한 사람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선의 이데아는 모든 가치의 근원이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계승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탐구(探究)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