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조화체(調和體)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은 성상과 형상의 속성(屬性)이지만 이 본성론에서 말하는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은 각각 양적 실체(陽的實體), 음적 실체(陰的實體)로서의 부부(夫婦)를 말한다. 부부(夫婦)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가정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어 왔다.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모두 양음의 결합에 의해서 존재하고 번식한다. 만물이 이러하기 때문에 인간의 양음의 결합 즉 부부(夫婦)의 결합도 단순한 남녀의 육체적 결합으로만 보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는 것은, 부부(夫婦)를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면 오늘날 선진제국(先進諸國, 선진국들)에서처럼 남녀가 결혼했더라도 쉽게 갈라지곤 함으로써 결혼의 신성성(神聖性)이나 영원성(永遠性)은 상실되기 쉽게 된다. 이것은 본래의 부부의 모습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왜 존재(存在)하며, 결혼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참된 해답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일생을 독신(獨身)생활로 일관(一貫)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통일사상은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
첫째로, 본연의 부부는 각각 하나님의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 중의 1성(一性)을 대표(代表)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부부의 결합은 양성-음성을 지닌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의미한다. 부부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횡적(橫的)으로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종적(縱的)인 사랑이 거기에 임(臨)하게 되어서 여기에 사랑의 상승작용(相乘作用)에 의한 생명(生命)의 창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둘째로, 본연의 부부의 결합은 하나님의 창조과정의 最後의 단계이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우주 창조의 완료(完了)를 의미한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 해와의 완성과 더불어 우주의 창조는 완료되었을 것이다. 우주 창조의 최종적인 목표는 만물의 주관주인 인간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부의 완성은 우주 창조의 완료를 의미한다. 그러나 부부(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 창조는 완료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창조(再創造)의 섭리를 계속해 오신 것이다. 재창조란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개체(個體)를 완성시키고 더 나아가서 부부로서 완성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로 창조되었으나 남자만으로 혹은 여자만으로는 주관주가 될 수 없다. 부부로서 완성할 때 비로소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우주창조가 완료되는 것이다.
셋째로, 본연의 부부는 각각 인류의 절반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부부의 결합은 인류의 통일을 의미한다. 즉 부부에 있어서 남편은 전인류(全人類)의 남성을 대표하고, 아내는 전인류의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총인구(總人口)는 약 66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각 33억을 대표한 가치(價値)를 지니고 있는 것이 그 남편이고 그 아내이다.
넷째로, 본연의 부부는 각각 가정의 절반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부부의 결합은 가정의 완성을 의미한다. 가정에서 남편은 모든 남성을 대표하고 아내는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상(以上)과 같은 측면에서 볼 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가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현현(顯現)과 우주 창조의 완성을 의미하며 인류의 통일과 가정의 완성(完成)을 의미한다. 이처럼 부부의 결합은 실로 신성(神聖)하고도 존귀(尊貴)한 결합인 것이다.
그런데 부부의 조화는 가정적 사위기대의 형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가정적 사위기대의 형성이란, 창조 때에 인간에게 허락한 제2축복(第二祝福)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同사위기대(四位基臺)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격적으로 완성한 남편과 아내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사랑과 미를 주고 받음으로써 형성된다. 그런데 이 때의 부부의 결합은 원상내(原相內)의 주체와 대상의 조화를 닮게 된다. 즉 원상의 자동적 사위기대(自同的四位基臺)를 닮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의 자녀 번식은 하나님의 인간창조를 닮고 있다. 이것은 원상의 발전적 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를 닮는 것이다. 이때 부부는 각각 본심(本心)대로 살면서 서로 조화(調和)를 이루게 된다.
본심대로 산다는 것은 원상의 내적 사위기대(四位基臺)를 닮는 것이요,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원상의 외적 사위기대(四位基臺)를 닮는 것이다. 부부가 각각 원상(原相)의 모습을 완전히 닮아서 인격자로 성숙한 다음,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 임재하게 된다. 가정은 부부의 횡적사랑과 하나님의 종적사랑이 맞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완성된 가정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더 나아가서 국가, 세계를 이 地上에 세우게 되면 그것이 곧 지상천국(地上天國)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원상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완성한 세계란 본연의 질서를 통하여 실현(實現)되는 사랑의 世界를 말한다. 여기서 질서와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자 한다. 인간은 우주의 축소체이지만 가정도 우주의 축소체이다. 이때 인간은 구성요소(構成要素)로 본 우주의 축소체이며 가정은 질서로 본 우주의 축소체인 것이다. 가정이 질서로 본 우주의 축소체라는 말은 우주의 종적 질서(縱的秩序)와 횡적 질서(橫的秩序)를 닮아서 가정에도 축소된 형태로서의 종적 질서와 횡적 질서가 있게 됨을 뜻한다. 가정에 있어서의 종적 질서란 조부모(祖父母)→부모(父母)→子女→손녀(孫子)로 이어지는 질서를 말하며 횡적 질서(橫的秩序)는 부부간 및 부모중심의 형제자매간의 질서를 말한다. 사랑은 이러한 질서를 통해서 실현(實現)된다. 그리하여 사랑에는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이 있게 된다. 종적 사랑이란 부모의 자녀에 대한 내리사랑(下向愛)과 자녀의 부모에 대한 올리사랑(上向愛)이며 횡적 사랑이란 부부간의 사랑, 자녀상호 간의 사랑 등의 가로사랑(水平愛)이다.
이러한 사랑의 기본형을 토대로 하여 종적 가치와 횡적 가치의 기본이 되는 가정윤리가 성립된다. 종적 가치란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인 자애(慈愛)요, 자녀의 부모에 대한 사랑인 효성(孝誠)이다. 횡적 가치란 부부간의 사랑인 화애(和愛)요, 자녀 상호 간의 사랑이다. 이리하여 윤리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 가족구성원 상호간에 지켜야 할 행위의 규범(規範)이 되는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윤리론에서 상세히 논할 것임). 이러한 가정윤리를 사회(社會), 기업(企業), 학교(學校) 등으로 확대(擴大)시킨 것이 사회윤리요, 기업윤리요, 학교윤리이며 이웃사랑(愛), 민족애(民族愛), 원수에 대한 사랑, 자연보호운동 등도 모두 가정적 윤리를 터로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본성(本性)으로 본 인간관(人間觀)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애적 인간(愛的人間)(homo amans)이라 하겠다. 그런데 타락에 의해서 인간은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완성을 보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미완성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해와는 본연의 부부가 될 수 없었다. 즉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부부는 하나님마저 상실해 버렸다. 그리하여 우주(宇宙) 창조(創造)의 未완료(完了) 상태가 그대로 오늘에까지 지속(持續)되어온 것이다. 오늘날 가정문제(家庭問題)나 사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부부의 모습이 모두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그 때문에 가정과 사회가 어지러워졌고 국가와 세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부부가 화애(和愛)로써 조화(調和)를 이루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세계의 통일과 직결(直結)되는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의 전제조건이 된다. 따라서 부부의 화애(和愛)의 문제는 사회문제와 세계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