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역사관(觀)의 변천(變遷)과 통일사관(統一史觀)
이상으로 종래 역사관의 개요(槪要)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여기서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비교(比較)하여, 통일사관이 종래의 역사관을 통일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첫째로,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보는가 직선운동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리스의 순환사관(循環史觀), 슈펭글러의 문화사관(文化史觀)은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파악했으며, 기독교사관(基督敎史觀)이나 진보사관(進步史觀), 유물사관(唯物史觀)은 역사를 직선운동으로 파악했다. 한편 生의 철학사관(哲學史觀)은 유동(流動)하는 生의 성장과 더불어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진보사관의 변형(變形)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직선운동(直線運動)으로 파악하면 역사의 발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나, 인류역사에 있어서의 좌절(挫折)과 부흥(復興)의 의미(意味)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편, 역사를 원환운동으로 파악할 때, 국가나 문화의 멸망은 운명적인 것이 되어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다.
통일사관은 재창조(再創造)와 복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를 전진운동과 원환운동이라는 양면(兩面)을 가진 나선형운동(螺旋形運動)으로서 파악한다. 즉 역사는 목표(目標)-창조이상세계의 실현-를 향하여 발전해 간다는 전진적성격(前進的性格)과 더불어, 섭리적인물을 세워서 탕감법칙에 따라 잃어버린 창조이상세계를 복귀한다는 원환운동의 성격을 함께 지닌 나선형운동(螺旋形運動)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로, 결정론(決定論)이냐 비결정론(非決定論)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역사는 운명에 따라 필연적으로 운동한다는 그리스의 운명사관(運命史觀)과 슈펭글러의 문화사관(文化史觀)은 결정론(決定論)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진행한다는 섭리사관도 결정론이다. 이성 또는 세계정신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헤겔의 정신사관(精神史觀)이나, 역사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사회에 도달한다고 하는 유물사관도 결정론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을 초월(超越)한 어떤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하는 견해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언제나 역사의 힘이나 법칙에 끌려다니는 피동적(被動的) 존재(存在)에 불과하며,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한 노력에 의해서 역사를 개혁(改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한편 토인비는 자유의지론(意志論)의 입장에서 비결정론(非決定論)을 주장했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역사가 가는 길이 선택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인비의 비결정론(非決定論)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의 미래상은 불분명(不分明)하며, 따라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 통일사관은, 역사의 목표는 결정적(決定的)이지만 섭리적인 사건의 성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 외에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遂行)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역사의 과정은 비결정론이라고 본다. 즉 통일사관은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양(兩)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론을 책임분담론(責任分擔論)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비교해 볼 때 종래의 역사관은 각각 통일사관의 한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통일사관이 총합적(總合的), 통일적(統一的)인 역사관이라는 것도 알게된다. 그런데 토인비의 역사관에는 통일사관을 닮은 내용이 많이 있다. 섭리적으로 볼 때, 토인비의 역사관은 통일사관이 출현하기 위한 전단계를 준비한 史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토인비의 사관은 종래의 역사관과 통일사관을 연결하는 교량의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