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체의식(聯體意識)과 민주주의(民主主義)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실제로는 주체격위와 대상격위에 함께 서있다. 이것은 인간이 연체(聯體)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주체격위와 대상격위를 겸비(兼備)한 존재, 즉 이중격위(二重格位)를 가진 존재이다. 이것을 연체격위(聯體格位)라고 한다. 연체격위는 이중(二重)목적, 즉 전체(全體)목적과 개체(個體)목적을 지닌다. 예컨대 어느 직장에 있어서 한 부서(部署)의 장(예: 과장, 부장)은 부하(部下)에 대하여 주체격위에 있으나 동시에 상사(上司)에 대하여 대상격위에 처해 있다. 그 회사에 있어서 최고의 주체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대상격위에 있으므로 인간은 누구나 엄격히 말해서 모두 연체격이(聯體格位)에 있는 것이다. 연체격위에 있어서 취해야할 마음의 자세는 대상의식과 주체의식을 겸비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연체의식(聯體意識)이라고 한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인간은 먼저 대상격위에 있다가 다음에 주체격위에도 서게 된다. 따라서 연체의식에 있어서는 대상의식이 우선(優先)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주체의식은 대상의식의 기반위에 세워지는 것이 본연의 모습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에 있어서 인간이 주체의 위치에 설 때, 대체로 주체의식을 우선(優先)하게 된다. 그 전형적(典型的)인 예가 독재자(獨裁者)들이다. 독재자들은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자기의 뜻대로 하려고 한다. 그러나 본연의 사회에서의 지도자는 비록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하나님 앞에 대상의 위치에 있음을 의식하고 겸손성(謙遜性)을 잃지 않는다.
다음에 민주주의에 있어서의 연체의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다수결주의(多數決主義)와 권리평등(權利平等)의 사상으로서 이 권리평등의 사상은 로크(J. Locke, 1632~1704)의 `자연권(自然權)의 평등'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홉스(T. Hobbes, 1588~1679)에 있어서는 인간의 자연상태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鬪爭)이었으나 로크는 자연상태(自然狀態)에 있어서 자연법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 있다고 언명(言明)하면서, 자연상태에 있어서의 인간은 자연(自然)의 권리(權利)-생명(生命), 자유, 재산(財産)에 대한 평등한 권리(權利)-를 가진다고 하였다. 이 자연권(自然權) 사상의 토대가 되는 것은 고대(그리스시대)로부터의 자연법 사상이었다. 이 자연법 사상에 근거한 권리평등의 사상이 근대민주주의(近代民主主義) 원칙의 성립의 동기가 되었다. 여기의 권리평등이란 개인 개인의 권리(權利)의 평등을 뜻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자연법에 근거한 권리평등의 사상을 정확히 말한다면 기독교의 하나님 앞에서의 平等의 사상에서 온 것이다. 즉 존 로크의 자연권(權利平等)사상은 인간의 平等한 자연권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의 평등권사상(平等權思想)이 근대민주주의 성립의 참된 근거였다. 따라서 평등사상(平等思想)은 하나님앞에 대상으로서의 인간의 평등을 뜻하는 것으로서 본래 평등사상은 대상의식의 사상(思想)이며, 따라서 질서의식의 사상이었다. 즉 민주주의는 본래 대상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출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발달함에 따라서 하나님의 모습은 점점 대중의 관심권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개인의 권리주장(權利主張)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대상의식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러 개인은 본래대로의 대상의식이나 연체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 주로 주체의식만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주체의식(主體意識)만을 지닌 인간의 관계, 즉 주체와 주체의 관계로 변질(變質)되었으며 이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질서부재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주체와 주체의 관계는 본질(本質)상 상극적(相剋的)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민주주의는 그 성립(成立)된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에는 비교적 건전한 발전을 계속하였다. 그것은 기독교 정신에 의해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대상의식(對象意識)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 과학의 발달과 유물사상(唯物思想)의 확산(擴散)의 영향을 받아서 기독교는 세속화되어 갔으며, 따라서 인류의 정신지도의 능력(能力) 또한 사라져 갔던 것이다. 게다가 사회는 급속히 산업사회로 화하였고 가치관은 다원화(多元化)되어 갔다.
이러한 사회환경의 변천과 함께 민주주의의 권리평등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서의 대상(對象)의 평등에서 法 앞에서의 주체의 권리평등사상으로 변질(變質)되어 갔으며, 그 결과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민주주의의 모순 즉 주체와 주체의 상극적(相剋的)인 요인이 드디어 표면화되면서 여러 가지의 사회적 혼란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주체와 주체의 상호관계는 서로 상극(相剋)의 관계이다. +전기와 +전기가 서로 배척(排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주체)의 권리평등의 사상은 기독교의 사랑과 같은 조절기능이 없는 한 필연적(必然的)으로 상충현상을 빚어내기 마련이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紛爭), 충돌(衝突), 전쟁(戰爭), 상호증오(相互憎惡) 등을 비롯하여 갖가지의 불화현상은 모두 이 주체와 주체간의 상극작용의 표현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민주주의의 권리평등(權利平等) 사상은 시초부터 상극요인을 안고 출발하였으며, 따라서 때가 이르면 그 상극작용은 반드시 표면화(表面化)될 숙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때가 당도하자 잠재(潛在)해 왔던 상극작용이 표면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전체 민주주의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殺人), 강도(强盜), 방화(放火), 테러, 파괴, 마약중독, 부정부패, 性도덕(道德)의 퇴폐, 이혼율(離婚率)의 증대, 가정(家庭)의 붕괴, 에이즈(AIDS)의 확산, 성범죄(性犯罪)의 만연 등도 실은 모두 이 민주주의의 상극적 요인(要因)을 바탕으로 하고 일어나고 있는 가치관의 붕괴현상의 결과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사회의 가치관의 붕괴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인간의 머리에 다시 본래의 대상의식(對象意識)을 부활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인류의 참된 주체인 하나님을 다시 맞아들여야 하며 민주주의가 출발할 때의 본래의 정신(精神) 즉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실재(實在)를 합리적(合理的)으로 증명(證明)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게 되면 자기의 상위자를 존경하게 되고, 또 상위자는 하위자를 사랑으로 지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국민을 사랑하게 되고, 국민은 정부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민주주의가 하나님을 중심한 민주주의가 될 때,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병폐(病弊)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게 된다. 통일사상은 하나님을 중심한 민주주의를 천부(天父) 중심의 형제주의라고도 한다. 이것을 간단히 천부주의 또는 형제주의라고도 부른다. 부모없는 형제가 있을 수 없고 형제를 떠난 부모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전인류(全人類)는 참부모(父母)인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하고 사랑의 형제자매(兄弟姉妹)가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만물에 대한 인간의 주관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3대축복(三大祝福)의 하나로서 만물주관을 명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했더라면 만물의 주관격위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만물주관이란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이 만물을 단순히 지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제1차, 2차, 3차산업)활동을 위시한 모든 경제활동과 제조활동, 기술활동이 모두 이 주관에 속한다. 그러면 이러한 만물주관에 대한 인간의 심적태도(心的態度)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은 만물에 대해서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만물에 대한 사랑이란, 온정(溫情)을 가지고 만물을 소중히 다루면서 위해 주는 것이다. 즉 사랑을 터로 하고 만물을 다루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은 천도(天道)에 따르는 주관이기 때문에 만물(萬物, 자연)도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