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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래그머티즘

1) 프래그머티즘의 윤리관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경험적, 과학적 인식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프 래그머티즘도 분석철학과 동일한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퍼 어스(C. S. Peirce, 1839~1914)에 의해서 제창된 프래그머티즘은 제 임스(W. James, 1842~1910)에 의해서 일반화되었다.

제임스는 ‘유효한 것(It works)이 진리이다’라고 했다. 예컨대 누군 가가 현관에 와서 ‘계십니까’하고 기척을 낼 때, 주인은 방안에서 그를 보기 전에 그 찾는 음성만을 듣고서 그가 K씨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그리고 나서 현관에 나가 보고 그가 실제로 K씨였음이 확인되었다면, 주인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진리라고 간주하게 된다. 즉 행위를 통하 여 검증된 지식이 진리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란 작업가치 (working value)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의 개념에 대한 진리란 그 개념에 내속內屬해 있는 고정된 성질이 아 니다. …… 사건(일의 결과)에 의해서 참이 되는 것이다. 진리의 진리성 은 사실에 있어서 하나의 사건, 하나의 과정인 데에 있다. 즉 진리(진리 성)가 자기 자신을 진리화해 가는 과정, 진리의 진리화의 과정인 데에 있다. 진리의 효력이란 진리의 효력화의 과정인 것이다.9)

이와 같이 진리의 기준 그대로가 가치의 기준, 선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어떤 윤리적 명제는 이론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의 만족이나 평안함을 준다는 점에서 진리이며, 또 선이다. 따라 서 선이란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며, 인류전체의 경험에 의해서 날마다 새로이 수정, 개선되어 가는 것이다.

프래그머티즘의 완성자는 듀이(J. Dewey, 1859~1952)였다. 듀이는 지성知性은 미래의 경험에 대해서 도구적으로 작용하는 것, 즉 지성은 제문제를 유효하게 처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도구주의 (instrumentalism)를 주장했다. 제임스의 경우는 종교적인 진리도 인 정했지만, 듀이는 일상생활의 입장에 서서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완전 히 배제하였다.

이와 같은 듀이의 사고방식은 인간을 하나의 생명체 또는 유기체로 보는 인간관에서 유래한다. 생명체는 항상 환경과 상호작용 하에 있으 나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면, 거기에서 벗어나서 안정된 상태로 옮아가 고자 한다. 그 때, 도구道具로써 활용되는 것이 지성知性이며, 이러한 지 성을 터로 하고 풍요豊饒한 사회,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한 행위 라고 보았다.

듀이는 과학적인식과 가치인식을 동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지성을 사용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상태가 도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실과 가치의 분열은 없다. 선이란, 욕 망이 충족되도록 생활의 요구에 따라 일보일보 인식을 성장시키면서 실현해 가는 것으로서, 일거一擧에 인식되는 것 같은 구극적究極的인 선을 부정했다. 선의 개념도 문제를 유효하게 처리하기 위한 도구요, 수단 에 불과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덕적 원리란 일정한 방법으로 행동을 하라든가, 행동하는 것을 보류하 라는 식의 명령은 아니다. 원리는 어떤 특별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도 구이며, 정사正邪는 규제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상황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다.10)

2) 통일사상에서 본 프래그머티즘의 윤리관

제임스는 유효한 것, 유용한 것이 진리이며 가치라고 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 지식이나 가치를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통일 사상에서 볼 때, 일상적인 의․식․주의 생활에 지식이나 가치를 종속시 키는 것은 전도轉倒된 사고방식이다. 의식주의 일상생활은 진․선․미의 가 치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진․선․미의 가치는 창조목적을 기준으로 해 야 한다. 창조목적이란 참된 사랑(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목적에 일치하는 행위가 선이 되는 것이지, 생활에 유용한 행위가 반드시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생활에 유용한 행위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적합하면 선이 된다. 제임스는 생활에 유용한 것 을 진리와 선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생활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인간 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라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듀이에 의하면, 선의 개념을 포함한 지성은 도구이다. 그러나 지성 이 도구라는 주장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통일사상에서 보면 심정(사 랑) 혹은 목적을 중심으로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이 수수작용함으로써 로고스(사상)가 형성된다. 내적성상은 지․정․의의 기능이고, 내적형상은 관념, 개념, 수리, 원칙 등이다. 여기서 내적성상과 내적형상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므로, 내적형상은 내적성상의 도구라고 할 수 있 다. 또한 내적성상인 지․정․의의 기능도 사랑의 실현을 위한 도구라고 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듀이의 경우, 지성도 선의 개념도 모두 사회 개량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듀이가 말하는 도구설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일상생활의 풍부함을 목적으로 하는 한, 그것은 옳지 않다. 선의 개념들 속에는 생활의 목적은 될지언정 그 수단으로는 될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의 개념은 바로 생활의 수단이 아니고 목적인 것이다.

또, 듀이는 사회를 개선하기 위하여 과학을 발전시키면, 그것은 그 대로 가치와 일치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이 그대로 가 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창조목적의 실현-하나님의 사랑의 실현-을 목표로 하게 될 때 비로소 사실과 가치는 일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