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헬레니즘의 로마시대의 가치관
헬레니즘시대란 알렉산더대왕(Alexander the Great, 356~323 B. C.)이 페르시아제국을 멸한 후부터 로마군이 이집트을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를 통일할 때까지의 약 3세기 간을 말한다. 이 시대는 오로지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는, 개인주의 풍조가 지배하던 때였다. 폴리스 국가의 붕괴로 국가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은 소용이 없게 되었고 그리스人들은 불안정한 사회정세하(社會情勢下)에서 부득이 개인의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cosmopolitanism)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상은 스토아학파(學派), 에피쿠로스학파(學派), 회의학파(懷疑學派)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인주의의 사조(思潮)속에서 인간은 자기의 무력성(無力性)을 통감(痛感)하게 된다. 그러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인간이상의 위치에 있는 어떤 존재에 의지하기를 원하게 되면서 점차로 종교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드디어 신플라톤주의(主義)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1) 스토아학파(學派)
우주만물(宇宙萬物)에는 로고스(法則, 이성)가 깃들어 있으며 우주는 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도 로고스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에 의해 우주의 법칙을 알고 자연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스토아학파의 주장이었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정욕(情欲)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정욕을 떠나 아파테이아(apatheia)-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완전히 평정(平靜)한 마음의 상태(離欲狀態)-에 도달해야 한다고 하면서 금욕(禁欲)을 주장하였다.
즉 아파테이아가 최고의 덕(德)이었다. 그리스人이거나 동방인(東方人)이거나 전부 우주의 법칙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스토아학파에 있어서의 로고스는 신(神)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로서 동포인 것이다. 이리하여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cosmopolitanism)가 세워지게 되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는 키프로스의 제논(Zenon, 336~264 B. C.)이었다.
2) 에피쿠로스학파(學派)
금욕(禁欲)을주장한 스토아학파와는 반대로 쾌락(快樂)을 선(善)으로 설명한 사람들이 에피쿠로스(Epikuros, 341~270 B. C.)를 창시자(創始者)로 하는 에피쿠로스학파이다. 에피쿠로스는 현세에서의 개인적 쾌락만이 그대로 덕(德)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이 쾌락은 육체적(肉體的)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육체(肉體)에 있어서 고통이 없는 것과 영혼(靈魂)에 있어서 흐트러짐이 없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이 없는 평안(平安)한 마음의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이고상태(離苦狀態)-라고 부르고, 이것을 최고의 경지로 삼았다.
3) 회의학파(懷疑學派)
인간은 사물에 대해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즉 어떻게든지 판단(判斷)하려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고로 마음의 平安을 얻으려면 일절(一切)의 판단(判斷)을 정지(停止)하라고 엘리스의 퓌론(Pyrrhon, 356~275 B. C.)은 말했다. 이것을 판단중지(判斷中止, 에포케, epoche)라고 한다. 인간에 있어서 진리(眞理)는 인식(認識)할 수 없으므로 일체의 판단을 그만두는 것이 소망스럽다고 회의학파(懷疑學派)는 주장했다.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도, 에피쿠로스학파의 아타락시아도, 회의학파(懷疑學派)의 에포케도 모두 개인적인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때에 이르러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탐구(探求)했던 가치의 절대성은 의문시되기 시작한다.
4) 新플라톤주의(主義)
헬레니즘시대(時代)에 이어지는 로마시대에 있어서도 그리스철학(哲學)은 그대로 계승되었으나 헬레니즘의 로마시대의 철학이 궁극에는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의 新플라톤主義에 당도(當到, 도달)했던 것이다. 플로티누스는 일체의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유출(流出)되었다고 하는 유출설(流出說)을 주장했다.
즉 처음에는 하나님의 완전성에 가까운 누스(nous, 理性), 다음에 영혼(靈魂), 그리고 가장 불완전한 물질(物質)이라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유출(流出)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래 그리스철학은 신(神)과 물질이 대립한다는 이원론(二元論)的인 입장이었으나 플로티누스는 하나님이 전체라고 함으로써 일원론(一元論)을 주장했다.
인간의 혼(魂)은 한편으로는 감성적인 물질세계로 흘러감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누스에서 하나님으로 되돌아 가고자 한다. 그래서 인간은 감성적인 것으로부터 떠난 후 하나님을 직관(直觀)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고 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최대의 덕(德)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무아(無我, 엑스타시스, ecstasy)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고 하면서 그것을 최고의 경지라고 하였다. 그리스풍의 철학은 플로티누스와 더불어 종언을 고했지만, 新플라톤주의(主義)는 다음에 나타나는 기독교철학(哲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