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상(原相)의 논리적(論理的) 구조(構造)
이상으로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의 서론에 해당하는 기본입장의 항목을 마치고 이제부터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의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먼저 원상의 논리적구조에 관해서 살펴보자.
(1) 로고스형성(形成)의 구조와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논리학(論理學)은 사고(思考)의 법칙(法則)과 형식(形式)에 관한 학문이다. 그런데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의 근거는 원상의 본성상(本性相內)의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 특히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 있다. 따라서 논리학(論理學)이 사고를 취급하는 학문인 이상, 이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서 어떻게 사고(思考)가 발생하는가를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도 원상(原相)의 이와 같은 논리구조(論理構造)를 본받아서, 사랑의 목적을 실현(實現)하기 위한 내적사위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서 사랑을 지향(指向)하는 사고(思考)가 생겨나게 된다.
(2) 본래의 인간의 모습
따라서 본래 인간의 사고(思考)에 있어서는, 그 사고(思考)의 동기(動機)가 심정(心情) 또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사랑의 실천(實踐)을 위한 사고(思考)이며,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도 사랑의 실천(實踐)을 위해서인 것이다. 자유를 가지고 악(惡)을 행하거나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자유의 남용(濫用)이다. 사랑의 실현(實現)이란 요컨대 사랑의 세계의 실현(實現)이며, 창조이상세계(創造理想世界)의 실현이다. 사랑을 지향(指向)하는 사고를 많은 인간이 가지면 가질수록 사랑의 세계(世界)는 보다 빨리 실현(實現)될 것이다.
(3)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
창조의 이단구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同 2단구조(構造)와 논리학(論理學)과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란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와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가 연속적으로 형성(形成)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에서 로고스가 형성되는데, 이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가 바로 논리구조(論理構造)이다.
그러면 이때의 외적발전적사위기대는 논리학(論理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즉 논리학(論理學)에 대하여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 있어서 사고(思考)는 창조목적(創造目的)의 실현(實現) 또는 사랑의 실현을 지향(指向)하며, 따라서 사랑의 실천(實踐)을 전제(前提)로 하기 때문이다. 실천(實踐)한다는 것은 마음에 생각한 것을 외부(外部)에 대하여 실제(實際)로 行하는 것이며, 바로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의 형성(形成)을 뜻한다. 실천의 대상은 만물이며 인간이다. 즉 사랑의 실천이란 만물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 있어서 사고(思考)한다는 것은 거기에 반드시 동기(動機)와 목적과 方向이 있으므로, 반드시 실천(實踐)에 연결되고 행동(行動)과 결부되어야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상하시고, 로고스를 만들고, 창조를 개시(開始)하셨다. 그래서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라는 개념(槪念)이 성립한 것이다. 형식논리학(形式論理學)에 있어서는 사고(思考) 그 자체만의 형식(形式)이나 법칙(法則)을 취급하지만, 통일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잘못은 아니더라도 불충분(不充分)한 것이다.
보통 지행일치(知行一致)라든가 이론과 실천(實踐)의 통일을 자주 말하는 것은, 그 논리적(論理的) 근거(根據)가 이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