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신사관(精神史觀; 진보사관(進步史觀))
르네상스시대(時代)에 들어오면서 신학적(神學的)인 역사관은 점차 모습을 감추게 되었으며, 18세기(世紀)의 계몽주의시대에 이르러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신(神)의 섭리가 아니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역사관이 출현하였다. 이것은 역사가 인간의 정신(精神)의 진보에 따라 거의 일직선(一直線)으로, 그리고 필연적(必然的)으로 진보해 간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관(史觀)을 정신사관(精神史觀) 또는 진보사관(進步史觀)이라고 한다.
비코(G. Vico, 1668~1744)는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했으나 세속의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역사는 하나님의 의지(意志)를 가지고서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역사의 파악에 있어서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背後)에 숨게 되고 인간이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13)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역사에 작용한 신(神)의 힘을 배제(排除)했다. 즉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신(神)이 아니고 높은 교육을 받은 자들로서 과학을 받아들인 사람들 즉, 계몽사상가들이라고 하였다.
콩도르세(Condorcet, 1743~1794)는, 인간의 이성이 각성하면 역사는 과학적으로나 윤리적(倫理的)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진보(進步)한다고 주장했다.
칸트(I. Kant, 1724~1804)는, 역사의 목적은 인간의 모든 고귀(高貴)한 재능의, 여러민족(諸民族)의 결합체(結合體)에서의 실현이라고 하면서, 세계시민적(世界市民的) 의도(意圖)에 있어서의 인류의 역사를 제언(提言)하였다.
낭만주의(浪漫主義)의 철학자 헤르더(J. G. Herder, 1744~1803)는 인간성의 발전이 역사의 목표라고 하였다.
헤겔(Hegel, 1770~1831)은 역사를 정신(精神)의 자기실현(自己實現) 혹은 이념(理念)의 자기실현(自己實現)으로 보았다.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사는 이성적(理性的)으로 진행한다는 견해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을 그는 세계정신이라고 불렀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은 인간을 조종하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이성의 간계(奸計)라고 하였다. 헤겔의 역사관은 특히 정신사관(精神史觀) 또는 관념사관(觀念史觀)이라고도 불리운다.
헤겔은 프러시아에서 자유의 이념이 실현된 이성국가(國家)가 도래한다고 보고 있었으나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고 도리어 착취나 인간소외(疎外) 등의 反이성적(理性的)인 사회문제가 심화(深化)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역사철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 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