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일인식론(통일인식론)의 개요(槪要)
통일인식론은 종래의 인식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性格)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종래의 인식론이 다룬 문제, 예컨대 인식의 기원, 인식의 대상, 인식의 방법 등을 다루면서 통일인식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식(認識)의 기원(起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인식의 기원이 경험에 있다고 보는 경험론과 이성에 있다고 보는 이성론(合理論)이 형성되었으나, 경험론은 흄에 이르러 회의론(懷疑論)에 빠졌고, 합리론은 볼프에 이르러 독단론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칸트는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에 의해 경험론과 합리론의 통일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물자체(物自體)를 불가지(不可知, 알 수 없는)의 세계에 남겨놓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통일인식론의 입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까지의 인식론은 인식의 주체(人間)와 인식의 대상(萬物)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의 관계를 명확히 몰랐기 때문에, 이성론과 같이 인식의 주체에 중점을 두고 이성(또는 悟性)이 추론하는 대로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거나, 경험론과 같이 대상에 중점을 두고 감각을 통하여 대상을 그대로 파악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대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요소와 주체가 갖고 있는 사유형식이 구상력에 의하여 종합?통일되어 인식의 대상이 구성(構成)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주체(인간)가 지닌 요소와 대상(만물)이 지닌 요소와의 종합에 의해 인식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그러나 그는 양자(주체와 대상)의 필연적인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주체의 카테고리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서밖에 인식할 수 없다는 논리(論理)가 되어서 결국 물자체는 불가지(不可知)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에 있어서, 이념이 자기를 외부에 소외(疎外)시켜서 자연(自然)이 되었다가 나중에 인간의 정신을 통하여 본래의 자기(自己)를 회복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연은 인간의 정신이 발생하기까지의 하나의 과정적(過程的) 존재(存在)에 불과하며, 항구적(恒久的)인 존재로서의 적극적인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對立)하는 우연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인식의 주체(인간)와 인식의 대상(만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무신론(無神論)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과 만물과의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 우주는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우주생성설(宇宙生成說)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인간과 만물은 서로 우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에 의해서 인간과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질 때 비로소 인간과 만물은 필연적인 관계가 확인(確認)되게 된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인간과 만물은 모두 피조물(被造物)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다. 즉 인간은 만물의 주관주(主管主), 즉 주관의 주체이며, 만물은 인간에 대하여 기쁨의 대상이요 미(美)의 대상이며, 따라서 주관의 대상이다. 주체와 대상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기계에 있어서의 원동기(原動機)와 작업기(作業機)의 관계와 같다. 원동기가 없는 작업기는 있을 필요가 없고, 또 작업기가 없는 원동기도 있을 수 없다. 양자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만물도 주체와 대상이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도록 창조된 것이다.
인식이란, 인간주체가 기쁨의 대상이요, 미(美)의 대상이요, 주관(主管)의 대상인 만물을 판단하는 행위이다. 그 때 인식 즉 판단에는 `경험(經驗)'이 수반되는 동시에, 판단 그 자체는 `이성'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식에는 경험(經驗)과 이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경험(經驗)과 이성은 양자가 다같이 필수적인 것이며, 양자가 통일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므로, 인간은 만물을 완전히 또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2) 인식(認識)의 대상(對象)
통일사상은 우선 인간의 외부에 만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즉 실재론을 인정한다. 인간은 만물에 대하여 주체이므로, 만물을 주관하고(栽培-育成하거나, 취급 가공 이용하거나 하는 것 등) 만물을 인식한다. 그것을 위하여 만물은 인식의 대상으로서, 또 주관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독립하여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인식론은 또, 인간은 만물의 총합실체상으로서 우주의 축소체 즉 소우주이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구조(構造), 요소(要素), 소성(素性)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몸을 표본으로 하여 상징적(象徵的)으로 인간과 비슷하게 창조된 것이 만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몸과 만물은 상사성(相似性, 서로 닮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에 있어서 몸은 마음을 닮도록 지어진 것이다.
인식은 반드시 판단을 동반하는데, 판단이란 일종의 측정작용(測定作用)이라고 볼 수 있다. 측정에는 기준(척도)이 필요한 바, 인식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觀念)이며, 그것을 `원형(原型)'이라고 한다. 원형(原型)은 마음속에 있는 영상(映像)이며, 내적인 대상이다. 이 마음속의 영상(映像)(내적영상(映像))과 외계의 대상에서 오는 영상(외적영상(映像))이 조합(照合)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실재론은 인간속에 있는 선재성(先在性)의 관념(觀念)을 무시하고 외계의 존재만을 주장했다. 반영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가 그 대표이다. 또 그와 반대로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 관념만이 인식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주장이, 버클리에 의해 대표되는 주관적관념론(主觀的觀念論)이다. 그런데 통일인식론에 있어서는 이 실재론과 관념론(觀念論, (주관적관념론))이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
(3) 인식(認識)의 방법(方法)
통일인식론의 방법은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방법과는 다르다. 수수법(授受法), 즉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의 원리가 통일인식론의 방법이다. 따라서 방법에서 볼 때 통일인식론은 수수법적인식론(授受法的認識論)이 되는 것이다. 인식은 주체(主體)(인간)와 대상(만물)의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주체와 대상에는 각각 지니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이 있다. 마치 예술의 감상에 있어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각각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었던 것과 같다. 작품을 감상할 때 주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대상에의 관심(關心)과 가치추구욕 및 주관적요소 등이며, 대상이 갖추어야 할 조건(條件)은 창조목적과 상대적요소의 조화(調和)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식(認識)에 있어서도 주체와 대상에 조건이 필요하다. 주체적 조건은 주체가 원형(原型)과 관심(關心)을 갖는 것이며, 대상적 조건은 대상이 속성(屬性)(내용)과 형식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수작용에는 존재의 2단구조(構造)의 원칙에 따라 내적수수작용(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과 외적수수작용(外的四位基臺)이 있다.
인식은 먼저 외적수수작용이 행해지고 이어서 내적수수작용이 행해짐으로써 성립된다. 이와 같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수수법적(授受法的) 인식론이라고 한다. 즉 관심을 가진 주체(인간)와 대상적 조건을 구비한 만물과의 사이에 수수작용이 행해진다. 이 때 먼저 감성적 단계의 마음(감성(感性))에 대상의 속성(내용)과 형식(存在形式)이 반영되어서, 영상(映像)으로서의 내용(감성적(感性的)내용)과 형식(감성적(感性的)형식(形式))이 형성된다. 이것을 외적영상(外的映像)이라고 한다. 외적수수작용(또는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에서 나타나는 영상(映像)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 및 형식(외적영상(映像))과, 주체가 전부터 가지고 있던 원형(原型)(내용과 形式: 내적映像)과의 사이에 또 수수작용(대비형의 수수작용)이 벌어진다. 이것이 내적수수작용(또는 내적四位基臺 形成)이다. 이 수수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인식이 성립된다.
여기서 통일인식론의 방법(方法)과 칸트의 선험적방법(先驗的方法) 및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과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칸트에 있어서의 내용(感性的내용)은 外界(대상)에서 수용된 것이며, 형식 즉 직관형식(直觀形式)과 사유형식(思惟形式)은 주체가 지닌 선험적(先驗的)이며 주관적(主觀的)인 요소이다. 따라서 내용은 대상에 속하고 형식은 주체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물자체(物自體)를 불가지(不可知, 알 수 없는)의 세계로 넘겨버렸기 때문에, 그의 감성적 내용은 실체(實體)가 없는 내용, 즉 주체(주관)에만 속하는 내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국 칸트에 있어서는 내용도 형식도 모두 주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관념론자(觀念論者)라고 자주 불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수수법적(授受法的) 방법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形式)이 주체에도, 대상에도 속해 있다. 즉 주체도 내용과 형식을 구비하고 있고, 대상도 내용과 형식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辨證法的) 방법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객관적(客觀的) 실재(實在)인 대상에만 속해 있고, 주체의 의식은 단지 그것을 반영(反映)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통일사상의 수수법적(授受法的) 방법(方法)은 선험적(先驗的) 방법과 변증법적(辨證法的) 방법을 함께 구비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외적수수작용에 반영론적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내적수수작용에 선험적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통일인식론에 있어서 변증법적방법(反映論)과 선험적방법이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