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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정적존재(心情的存在)

여기의 심정(心情)은 원상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情的)인 충동(衝動)이다. 심정(心情)은 사랑의 원천이며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정적(情的)인 충동이기도 한 것으로서 원상(原相)의 핵심(核心)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성상(性相)의 핵심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정은 하나님에 있어서 인격(人格)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 5:48)고 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인격(人格), 즉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닮으라는 가르침이다. 인간에 있어서도 심정은 인격의 핵심이 되게 되어 있었다. 인간에 있어서 인격의 완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心情)을 체휼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인격(人格)을 완성한 인간이 바로 심정적 존재(心情的存在)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의 심정을 계속적으로 체휼하면 드디어 하나님의 심정을 완전히 상속받게 된다. 그러한 인간은 사람이나 만물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도리어 마음이 괴롭기 때문이다. 타락인간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어렵게 느끼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심정(心情)과 일치된 자리에 이르게 되면 생활 그 자체가 사랑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있으면, 가진 자(者)는 갖지 못한 者에게 베풀면서 살게 된다.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부(貧富)의 차(差, 차이)나 착취 등은 자연히 소멸하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효과(效果)는 사랑의 평준화(平準化)작용(作用)에 기인한다. 이와 같이 인간이 심정적 존재라는 말은 인간이 사랑의 생활을 하는 존재(存在)임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은 애적인간(愛的人間; homo amans)이 되는 것이다.

심정(心情)은 인격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인간이 심정적 존재라는 말은 인격적 존재임을 또한 뜻한다. 그것은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이 원만한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됨을 뜻하며 또한 심정을 중심으로 지-정-의의 기능이 균형적(均衡的)으로 발달하게 됨을 의미한다.

타락(墮落)한 인간에 있어서는 생심(生心)의 기능이 약해서 생심(生心)이 육심(肉心)에 주관당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이성(知的能力)이 대단히 발달해 있으면서도 정적(情的)으로 미숙(未熟)하거나 선(善)을 행하려고 하는 의지력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서 심정적 존재(心情的存在)가 되면 지-정-의는 균형적(均衡的)으로 발달하고, 또 생심(生心)이 주체의 입장에서 육심(肉心)을 주관하면서 육심과 함께 원만한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행하게 된다.

심정은 또 성상(性相)의 핵심으로서 지(知)-정(情)-의(意)의 기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知)-정(情)-의(意)는 각각 진(眞)-선(善)-미(美)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즉 지(知)는 인식하는 능력으로서 眞의 가치를 추구하며, 정(情)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는 능력으로서 美의 가치를 추구하며, 의(意)는 결의(決意)하는 능력으로서 선(善)의 가치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 추구는 모두 심정을 동기로 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지적활동(知的活動)에 의해서 진리를 추구할 때 그 성과는 과학, 철학 등의 학문으로 나타나며, 정적활동(情的活動)에 의해 미(美)를 추구할 때 그 성과는 예술로 나타나며, 의적활동(意的活動)에 의해 선(善)을 추구할 때, 그 성과는 도덕(道德)-윤리 등으로 나타난다.

정치, 경제, 법률, 언론, 스포츠 등도 모두 지(知)-정(情)-의(意)의 활동의 성과인 것이다. 따라서 심정은 지(知)-정(情)-의(意)를 중심한 전체 문화활동의 원동력(原動力)이 되고 있으며, 특히 예술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정˙의의 활동의 성과의 총화(總和)가 바로 문화이며, 본연(本然)의 세계에 있어서는 심정적(心情的) 인간(사랑의 인간)이 문화활동의 주역이 된다. 이 내용을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3-1과 같다.

이와 같이 심정(心情)은 본래 문화활동(文化活動)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인간이 이룩했어야할 문화는 본래 심정문화(心情文化)였다. 이것이 참다운 문화이며 하나님이 아담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던 아담문화이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심정문화(心情文化)는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기심(利己心)을 기반으로 한 문화, 즉 지적활동(知的活動), 정적활동(情的活動), 의적활동(意的活動)이 통일을 이루지 못한 문화, 따라서 분열(分裂)된 문화가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예컨대 경제생활(經濟活動)에 있어서 인간은 오늘날까지 돈 버는 것만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본연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가난한 생활을 하는데, 자기만이 유복(裕福)한 생활을 하게 되면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에 돈을 많이 모으면 이웃이나 사회에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즉 기업활동(企業活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領域)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여기에 심정문화(心情文化), 사랑의 문화가 세워지게 된다. 이때 지적활동, 정적활동, 의적활동은 사랑을 중심하고 통일되게 된다. 이것이 통일문화이다. 따라서 사랑의 문화는 바로 통일문화이다.

오늘날까지 인류는 참다운 문화, 항구적(恒久的)인 문화를 실현하려고 수없이 시도했으나 결국은 실패(失敗)로 끝나고 말았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여러 문화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참다운 문화, 항구적(恒久的)인 문화가 어떠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중국(中國)에 있어서 공산주의식 문화운동인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도 그 일례(一例)였다. 유물변증법을 근거로 하여 노동을 기반으로 한 문화가 참된 문화인 줄 알고 일으킨 문화혁명이었으나, 그 결과는 인간성(人間性)의 억압(抑壓)과 근대화의 지연(遲延)과 경제의 파탄을 초래했을 뿐이었다. 참다운 문화란 심정을 중심으로 한 문화 즉 심정문화(心情文化)로서, 문선생님이 주창하고 계시는 신문화혁명은 바로 심정문화의 건설운동인 것이다.

여기서 문화와 문명(文明)의 개념에 관해서 살펴보자. 지(知)-정(情)-의(意)의 활동에 대한 성과의 총화를 과학과 기술 등의 물질적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을 문명(文明)이라 하고, 특히 종교, 예술 등의 정신적(精神的)측면에서 볼 때 그것을 문화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의 성과를 정신적(精神的)인 면과 물질적인 면으로 명확히 구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문화와 문명(文明)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통일사상에 있어서도 일반의 예(例)에 따라서 문화와 문명을 동일한 뜻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