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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입장

(1) 사고(思考)의 출발점과 방향

종래의 논리학은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을 다루고 있지만,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은 먼저 `사고의 출발점'에 대하여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즉 `왜 사고가 필요한가'라는 데서부터 출발하며, 그 다음에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간은 왜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 창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에 앞서, 심정을 동기로 하여 사랑을 실현코자 하는 목적을 세워가지고, 그 목적에 부합되는 내용을 마음속에 구상하신 것이다. 이것이 생각이요, 로고스(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도 심정(心情)을 동기로 하여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을 세워 놓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이 본연의 생각의 자세이다. 여기의 목적이란, 피조물에 있어서는 피조목적이며, 여기에는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이 있다.

전체목적이란 사랑을 통하여 가족이나 이웃, 민족, 인류 등 전체에 대하여 봉사하면서 그 전체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께 봉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고, 개체목적이란 자기의 이기적(利己的)인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이다. 결국 이 두 가지의 목적이 인간이 사는 목적이며,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인간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에 있어서 전체목적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인간의 사고(思考)는 일차적(一次的)으로 전체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행해야 하며, 2차적으로는 개체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행해야 한다. 그런데 개체목적도 결국 전체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본래 자기이익을 중심으로 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타인(他人)을 사랑하기 위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의 사고의 출발점이요 방향이다.

(2) 사고(思考)의 기준(基準)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기준(基準)이 되는 생각일까? 존재론이나 인식론에서도 그러했듯이 통일사상은 어떠한 부문(部門)도 그 논리전개의 근거를 모두 원상(原相)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사고(思考)의 기준도 원상(原相)에 있으며 그것은 원상(原相)의 논리적 구조(構造)이다. 즉 그것은 원상에 있어서 로고스(구상(構想))가 새로 생겨날 때 형성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이다. 이것은 심정이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중심하고, 내적성상(內的性相)과 내적형상(內的形狀)間에 이루어지는 원만하고 조화로운 수수작용을 말한다. 이러한 원상의 논리적구조가 사고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3) 관련분야(關聯分野)

통일논리학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또 하나 언급해 두고자 하는 것은 논리학(論理學)의 관련분야(關聯分野)이다. 형식논리학은 다른 분야(領域)와의 관련된 부분을 다루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그 대안으로서 변증법적논리학(辨證法的論理學)이나 인식논리학(認識論理學)이 출현했던 것이다. 통일논리학(統一論理學)에 있어서의 사고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을 터로 하는 창조목적(創造目的)의 실현(實現)에 있고, 그 기준은 원상(原相)의 논리구조(論理構造)에 있기 때문에 관련분야(關聯分野)는 대단히 넓다. 왜냐하면 사고(思考)의 기원(起源)은 하나님의 말씀(構想) 곧 로고스이며, 문화분야(文化分野)치고 어느 것 하나 구상(構想)(思考없이 운영되는 분야(分野)가 없기 때문이다.

원상(原相)에 있어서 로고스가 형성(形成)되는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는 모든 만물이 창조되는 창조의 2단구조(構造)의 일부이다. 따라서 로고스는 말씀인 동시에 우주(宇宙)의 법칙(法則)으로서, 만물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로고스(思考)의 학문으로서의 논리학도 모든 다른 영역과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내적발전적사위기대(內的發展的四位基臺)는 외적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와 더불어 창조의 2단구조(構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2단구조(構造)에 있어서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는 논리구조(論理構造)가 되며,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는 인식구조(認識構造)나 주관구조(主管構造)가 된다. 인식구조(認識構造)란 만물로부터 인식(認識)을 얻는 경우의 사위기대로서, 주로 과학(자연과학)연구의 경우에 조성되는 사위기대이며, 주관구조(主管構造)는 생산이나 실천, 즉 산업, 정치, 경제, 교육, 예술 등의 경우에 조성되는 사위기대이다. 따라서 논리구조(論理構造)를 기반으로 하는 논리학(論理學)은 인식구조(認識構造)나 주관구조(主管構造)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문화영역(領域)과 밀접(密接)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4) 원상구조(原相構造)

여기서 원상구조(原相構造)에 대해서 좀 더 언급해 보고자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원상구조(原相構造)는 안 밖 2단의 사위기대로 되어 있다. 이것을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이것을 닮은 피조물(被造物)의 이단구조를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그런데 원상구조(原相構造)에 있어서 안 밖의 사위기대(四位基臺)는 심정중심의 자동성(自同性)과 목적중심의 발전성(發展性)을 각각 지니게 되어 자동적(自同的) 및 발전적사위기대(發展的四位基臺)가 된다. 이 경우 안 밖의 사위기대(四位基臺)가 모두 발전적기대(發展的基臺)가 되는 경우의 원상구조를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라고 한다.

피조물(被造物)은 예외없이 모두 이 2종의 2단구조(構造)를 닮아서 지어졌기 때문에, 각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는 모두 존재(存在)의 2단구조(構造)와 창조(創造)의 2단구조(構造)(생물의 경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 있어서 논리구조(論理構造), 인식구조(認識構造), 존재구조(存在構造), 주관구조(主管構造) 등은 모두 각각 2단구조(構造)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인간이 관련된 모든 사위기대(四位基臺)는 반드시 2단의 사위기대(四位基臺), 즉 이단구조(二段構造))이다.

이것은 또 내적사위기대(四位基臺) 형성(形成)에 중점을 두는 영역(領域)과 외적사위기대(四位基臺)형성(形成)에 중점을 두는 영역(領域)과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例를 들면, 내적구조(構造)(사위기대)에 중점을 두는 논리학(論理學)이나 외적구조(構造)에 중점을 두면서 주관활동의 한 분야를 다루는 교육론(敎育論) 등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 이것을 요약하면 인간사회의 모든 2단구조(構造)는 원상(原相)의 2단구조(構造)에서 유래하므로 모두 상호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그림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