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의 본체론(本體論)과 통일사상
본체론(本體論)은 하나님 또는 우주의 근원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관한 이론으로서 일반적으로 사상체계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현실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도 대개 본체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몇가지 종래의 본체론(本體論)의 요점을 간단히 소개(紹介)하면서 그것이 현실문제에 어떻게 연관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1) 아우구스티누스 및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관(神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정신(精神)으로 보고, 그 하나님이 무(無)에서 질료를 만들어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의 원리를 이어받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질료를 가지지 않는 순수형상(純粹形相)중에서 최고의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하나님은 세계를 무(無)에서 창조하였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현실문제에 어떻게 연관(聯關)되어 있는가. 이 신관(神觀)은 정신을 근원적인 것으로, 물질을 2차적(二次的)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 신관(神觀)에서 물질적인 현실세계를 2차적(二次的)인 것으로 경시(輕視)하고 정신의 세계, 영적인 세계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사후의 세계에서의 구원(救援)만을 중요시하는 구원관이 오래도록 기독교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현실 생활에 있어서 물질을 무시하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성도들의 생활은 신앙상으로는 물질생활을 경시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물질생활을 추구(追求)하지 않을 수 없는 상호모순(相互矛盾)의 생활(生活)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것이다. 즉 기독교의 신관(神觀)을 가지고서는, 지상의 현실문제의 해결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지상(地上)의 문제는 대부분이 물질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관이 현실문제의 해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은, 첫째가 하나님을 정신으로만 보고 물질의 근원(根源)을 무(無)라고 본 데 있었고, 둘째로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불분명(不分明)한데 있었던 것이다.
2) 이기설(理氣說)
송대(宋代)의 신유학(新儒學)에 있어서 주렴계(周濂溪; 1017~1073)는 우주의 근원을 태극(太極)이라 했고 장횡거(張橫渠; 1020~1077)는 태허(太虛)라고 했다. 이것들은 모두 음양(陰陽)의 통일체로서의 기(氣)를 말한 것이다. 기(氣)란 질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유물론(唯物論)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정이천(程伊川; 1033~1107)에 의해서 만물은 모두 이(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이기설(理氣說)이 주창되었으며 나중에 주자(朱子(1130~1200))에 의하여 대성(大成)되었다. 이(理)란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무형의 본체를 뜻하고 기(氣)는 질료를 뜻하였다. 주자는 이(理)와 기(氣) 중에서 이(理)를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理)는 천지(天地)의 법칙(法則)일 뿐만 아니라 인간내에 있는 법칙이기도 하다고 설파하였다. 즉 천지(天地)가 따르고 있는 법칙과 인간사회의 윤리법칙은 동일한 이(理)의 표현이라고 본 것이다.
이같은 사상에 근거하여 현실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생활의 方向은 천지의 법칙을 맞추기 위한 조화(調和)의 유지에 치중하게 되었고 사회적인 윤리에 입각한 질서 유지에 편중하게 되었다. 또 모든 것을 법칙에 맡긴 나머지 자연이나 사회의 변화나 혼란에 대해서는 방관적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생겨났으며 자연을 지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창조적, 주관(主管)的인 생활방식 즉 능동적인 개혁(改革)의 방식은 경시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기설도 현실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이 실패의 근본원인은 태극(太極), 이기(理氣) 등에서 왜 만물이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그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지 않은 데 있는 것이다.
3)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
헤겔(G.W.F. Hegel, 1770~1831)에 의하면, 우주의 근원은 절대정신으로서의 신(神)이다. 신(神)은 절대정신이면서 동시에 로고스이며 개념이었다. 이 개념(로고스)이 모순을 매개로 하면서 정-반-합(正-反-合)의 삼단계의 변증법적 발전형식에 따라서 자기발전(자기전개)해 간다고 헤겔은 생각했다. 개념은 자기발전하여 이념의 단계에까지 발전한 후 자기를 외부로 소외시켜서(부정) 자연으로 나타난다. 그 자연속에서 이념은 변증법적 발전을 통하여 드디어 인간으로 나타나는데, 이 인간을 통하여 이념이 자신을 회복(回復)하고, 그 후 여러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절대정신으로서 자기를 실현한다. 즉 처음 출발했던 자기자신(절대정신)으로 복귀(復歸)한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개념(로고스)의 자기실현의 과정이다.
그리고 역사가 이성국가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유가 최고도로 실현되며 인간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모습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헤겔 철학에 따르면 세계와 역사는 로고스의 자기실현의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이 변증법적 발전형식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합리적인 모습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이같은 방식에 따라서 프러시아에 이성국가가 실현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는 비합리적인 현실을 필연의 법칙에 맡기고 방관만 해도 좋다고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또 자연을 이념의 타재형식(他在形式)으로 본 그의 자연관은 일종의 범신론(汎神論)33)이 되어서, 현실문제의 해결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쉽게 무신론적인 휴머니즘이나 유물론으로 전환(轉換)할 수 있는 소지(素地)를 갖고 있었으며, 모순을 발전의 계기로 봄으로써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투쟁이론을 발생시키는 소지도 지니고 있었다. 즉 헤겔 철학은 프러시아사회의 현실문제 해결에 실패하였으며, 도리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무신론철학을 출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가 신(神)을 로고스로 보고, 창조를 변증법에 의한 자기 발전으로 잘못 본 때문이었다.
4) 쇼펜하우어의 맹(盲)목적의지(意志)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는 헤겔의 합리주의(合理主義와 理性主義)에 반대하여, 세계의 본질은 비합리적인 것으로서 아무 목적도 없이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의지라 하고, 이것을 맹(盲)목적인 삶에의 의지(意志)(Blinder Wille zum Laben)라고 불렀다. 인간은 이 맹목적인 의지에 의해서 좌우되면서 오로지 외곬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 때문에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만족과 행복은 한 순간의 경험(經驗)에 불과할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불만과 고통뿐이며,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고통의 세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사상이 염세주의(厭世主義; pessimism)였다. 그 대신 그는 예술적 관조(觀照)나 종교적 금욕생활(禁慾生活)에 의해서 고뇌(苦惱)의 세계로부터의 구원을 시도해 보았으나, 그것은 현실문제의 해결은 커녕 오히려 현실로부터의 도피(逃避)의 이론이 되고 말았다. 쇼펜하우어가 현실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섭리의 참 내용을 몰랐기 때문이요, 둘째로 이 지상세계가 악(惡)(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인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5) 니체의 권력의지(權力意志)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라고 하여, 삶에 대하여 비관적태도(悲觀的態度)를 취한 데 대하여 니체(F. Nietzsche, 1848~1900)는 세계의 본질을 권력의지(權力意志; Wille zur Macht)라고 하여 철저(徹底)한 현실 긍정의 태도를 취했다. 니체에 의하면 세계의 본질은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라 도리어 강자(强者)가 되고 싶고, 지배력을 갖고 싶어하는 강력한 의지라고 했다. 이것이 그의 권력의지인데, 그는 권력의지를 체현(體現)한 이상상으로서 초인(超人)을 세워서, 인간은 초인을 목표로 삼고 生의 고통을 참으면서 어떠한 운명에도 견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신(神)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 기독교의 도덕(道德)을 강자를 동경하는 노예도덕으로 보고 삶의 본질에 적대(敵對)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니체의 권력의지(權力意志)의 사상은 힘에 의한 현실문제의 해결과 결부되었다. 그래서 히틀러나 뭇솔리니 등이 니체의 사상을 권력유지(權力維持)를 위하여 이용하였다. 즉 니체도 현실문제의 해결에 실패한 것이다. 니체의 실패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참된 신(神)까지를 부정한 데에 있다. 그가 부정해야 했던 신(神)은 참 신(神)이 아니라 거짓 신(神)이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던 신(神)은 거짓 신(神)이었을 뿐, 참 신(神)이 아니었는데 그는 참 신(神)까지를 부정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 마르크스의 변증법적(辨證法的) 유물론(唯物論)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세계의 본질은 물질이고, 사물속에 있는 모순(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세계는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사회의 변혁은 종교나 정의(正義)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에 의해서 폭력적(暴力的)으로 물질적인 생산관계(경제)를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계급혁명론도 현실문제 해결의 하나의 방안이었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지배계급(支配階級)이나 피(被)지배계급(支配階級)중 어느 편에 속하는 계급적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피지배계급(프롤레타리아트)측에 서서 혁명에 가담할 때만 그 인격적 가치가 인정된다. 그의 인간관에는 인격을 절대적인 것으로 존중하는 가치관이 없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지도자들은 혁명에 있어서 이용가치(利用價値)가 없는 인간, 혹은 혁명에 반대하는 인간에 대하여 하등에 양심의 가책 없이 학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공산주의체제는 동유럽과 소련에서 드디어 무너지고 말았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계급혁명론도 현실문제 해결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그 원인은 첫째로 참 하나님을 몰라보고 무조건 신(神)을 부정한 때문이요, 둘째로 폭력은 반드시 폭력을 낳는다는 천리(天理)를 무시하고 폭력에 의한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7) 통일사상의 본체론(本體論)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주의 근원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혹은 하나님의 속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인간관, 사회관, 역사관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현실문제 해결의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올바른 신관(神觀), 올바른 본체론(本體論)을 세움으로써 현실의 인생문제, 사회문제, 역사문제를 올바르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통일사상의 본체론 즉 원상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심정(心情)이다. 심정을 중심하고 성상의 내부에서 내적성상(知情意)과 내적형상(觀念, 槪念 등)이 수수작용을 하며, 또한 성상과 형상(질료)이 수수작용을 한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심정에 의해 목적이 세워지면 수수작용은 발전적으로 진행되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종래의 본체론은 이성이나 의지, 혹은 개념이나 물질이 중심이었다. 그리하여 정신만이 또는 물질 만이 실체라고 하는 일원론(一元論)이 나오게 되었고, 정신과 물질 모두가 우주의 실체라고 하는 이원론(二元論)도 나타나게 되었다. 통일사상에서 볼 때, 종래의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의 실상(實相)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였고, 또 속성 상호간의 관계를 바르게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통일사상의 본체론(本體論)(원상론)에 의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하나의 내용이 상세히 밝혀지게 되었고, 그 속성의 구조까지 정확히 또 구체적으로 소개됨으로써 현실문제의 근본적 해결의 기준이 확립되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그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