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주(宇宙)의 법칙(法則)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法則)(진리)을 천도(天道)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주체와 대상의 원만한 수수작용을 말한다. 우주(宇宙)의 수수작용(授受作用)의 법칙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개의 특징(特徵) 또는 소법칙(小法則)이 있다.
(1) 상대성(相對性)의 법칙(法則)
모든 존재는 그 자체(自體) 내부(內部)에 주체와 대상이라는 상대적 요소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 다른 존재와도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상대성(相對性)이다. 이와 같은 상대성을 갖지 않으면 만물은 존재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
(2) 목적성(目的性)과 중심성(中心性)의 법칙(法則)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는 반드시 공동목적을 갖고 있으며(目的性), 그 목적을 중심으로(中心性) 수수작용을 하고 있다.
(3) 질서성(秩序性)과 위치성(位置性)의 법칙(法則)
모든 개체에는 각자가 존재하는 위치 즉 격위가 주어져 있으며(秩序性), 그러한 격위(位置性)에 의하여 일정한 질서가 유지된다.
(4) 조화성(調和性)의 법칙(法則)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은 원화성(圓和性)이며 조화(調和)的이어서(조화성(調和性)), 거기에는 대립이나 투쟁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그 곳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 개별성(個別性)과 관계성(關係性)의 法則
모든 개체는 개성진리체이면서 동시에 연체(聯體)이다. 따라서 각 개체는 고유한 특성(개별성)을 지니면서 다른 개체와 일정한 關係(授受關係)를 가지고(關係性)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6)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과 발전성(發展性)의 法則
모든 유기체(有機體)는 일생을 통하여 변치않는 본질(本質) 즉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성장과 더불어 변화하고 발전하는 면(面) 즉 발전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도 일종(一種)의 유기체로서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7) 원환운동성(圓環運動性)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으며, 시간적(時間的) 또는 공간적(空間的)으로 원환운동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주(宇宙)의 小법칙(法則)들은 로고스의 작용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미 원상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는 법칙이면서도 심정을 터로 한 이성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그 로고스의 배후에는 사랑이 작용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로고스로 창조하실 때 심정과 사랑을 동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문선명 선생(文鮮明 先生)은 우주에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사랑의 힘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우주의 법칙이 개인에게 적용되면 도덕이 되고, 가정에 적용되면 윤리가 된다. 즉 우주의 법칙과 가정의 윤리법칙은 대응(對應)관계(關係)에 있다. 따라서 가정을 확대한 것이 사회이므로 사회에도 천도(天道)에 대응하는 사회윤리가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법칙을 위반(違反)하면 개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예컨대 태양계의 혹성(惑星) 중의 하나가 궤도(軌道)를 이탈하면 그 혹성은 자체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태양계에는 일대 異變이 일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이나 사회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윤리법칙을 위반하면 파괴(破壞)와 혼란(混亂)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혼란된 사회를 구하기 위해서는 윤리법칙(法則)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緊要)한 과제이다.
그런데 종래의 종교나 사상(思想)에 근거한 윤리론(倫理論)은 논리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분석적(分析的)이요, 이성적인 현대인에게는 설득력이 없으며, 오늘날은 옛부터 전해 내려온 윤리관이 대중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있다. 통일사상은 윤리법칙이 인간이 자의(恣意)로 만든 법칙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자연법칙)에 대응하는 필연적인 법칙임을 밝히고, 윤리와 도덕의 실천의 당위성(當爲性)을 가르치고 있다. 윤리와 도덕의 내용에 관해서는 가치론(價値論)이나 윤리론(倫理論)에서 구체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통일사상의 입장에서 우주법칙에 관한 공산주의(共産主義)의 견해를 검토해 보자. 공산주의의 우주관은 변증법적(辨證法的)인 우주관(宇宙觀)이므로 우주의 운동, 변화, 발전은 사물에 내재(內在)하는 모순(矛盾) 또는 대립물(對立物)의 투쟁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鬪爭), 즉 계급투쟁이 필요하다고 한다. 레닌은 철학(哲學)노트에서 대립물(對立物)의 통일(一致, 同一性, 균형)은 조건적, 일시적, 경과적, 상대적이다. 서로 배제(排除)하는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 운동이 절대적인 것처럼 절대적(絶對的)이다."라고 말하고 발전은 대립물의 `투쟁(鬪爭)'에 의해서이다." 라고까지 단언(斷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산주의는 대립물의 투쟁에 의해서 사물이 발전한다고 했으나 실제로 우주에는 그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 우주는 오늘날까지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과학자(科學者)가 우주를 관찰해 볼 때, 별의 폭발과 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부분적인 파괴현상일 뿐 결코 우주의 전체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체에 있어서 낡은 세포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출현(出現)하는 현상과 같은 것으로서, 새로운 별의 탄생을 위해서 낡은 별이 소실(消失)되는 과정인 것이다.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이므로 동물계에 한해서만은 대립물의 투쟁(鬪爭)이론이 맞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는지 모른다. 예컨대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는다. 공산주의는 이런 사실을 가지고 인간사회의 투쟁이론을 합리화하려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뱀과 개구리나, 고양이와 쥐의 경우는 서로 종(種)이 다른 동물끼리의 싸움이다. 분류학상(分類學上)으로 볼 때, 생물은 계문강목과속종(界·門·綱·目·科·屬·種)으로 분류된다. 고양이와 쥐의 경우, 목(目)에 있어서 고양이는 식육류(食肉類, 육신동물)에 속하고, 쥐는 설치류에 속한다. 고양이와 쥐는 목(目)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뱀과 개구리의 경우, 강(綱)에 있어서 뱀은 파충류에, 개구리는 양서류에 속한다. 뱀과 개구리는 강(綱)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즉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경우, 그 두 동물은 분류학상(分類學上) 최소한 종(種)의 단위가 다르다. 그런데 자연계에 있어서 같은 종에 속하는 동물들끼리는 싸우더라도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지만 고양이끼리는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지만 같은 뱀은 잡아먹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서 같은 종(種)에 속(屬)해 있으면서도 인간들끼리 서로 빼앗거나 죽이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계에서의 약육강식의 현상을 가지고 인간사회의 투쟁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사자의 집단사회내에 새로운 숫(雄)사자가 들어가면 그 집단의 두목과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보스(두목)를 결정하기 위한 싸움이며, 질서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다. 일단 강약(强弱)이 결정되면 약자는 바로 강자 앞에 굴복하고 싸움은 끝난다. 이러한 싸움은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따위의 투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와 같이 자연계에는 인간사회의 투쟁을 합리화하는 현상은 전혀 없다.
인간들끼리 서로 빼앗고 죽이는 행위는 인간이 타락(墮落)한 결과, 그 성향(性向)이 자기(自己)중심적(中心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면, 인간사회에서 투쟁은 볼 수 없게 될 것이며,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만물(萬物, 자연)의 주관주(主管主)가 되어서 자연계를 사랑으로 주관했을 것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가 말한 것처럼 자연계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모순(矛盾)의 법칙(法則)이나 대립물(對立物)의 투쟁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도리어 상대물(相對物)(주체(主體)와 대상(對象)) 간의 조화로운 수수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